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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 그린라이트 – 193일의 기록

AnS를 스팀 그린라이트(Greenlight: 그린라이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 글을 참조)에 등록한지 오늘(2013. 6. 17.)부로 193일째가 되어 있다. 그간의 성적을 공개를 하자면 다음과 같다.

  • 21,578명의 캠페인 페이지 고유 방문자
  • 5,863표의 ‘예’ 득표수(35%)
  • 358명의 즐겨찾기 등록
(이 이미지를 누르시면 투표 가능합니다: 스팀 아이디 필요)

프로젝트의 밥상을 엎은 이후 그린라이트 캠페인에 대해서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기 때문에 득표 자체는 크게 변화한 것은 없다고 보면 된다. 하루 평균 약 5 ~ 10 표 정도의 꾸준한 득표율을 보이고 있지만, 그에 비례하여 ‘아니오’ 득표도 꾸준하게 얻고 있기 때문에 ‘전면적이고 집중적인’ 캠페인 전략을 실행하지 않는 이상 큰 변화를 바라기는 힘들어 보인다.

지금까지 방치에 가깝게 두면서 찬찬히 살펴본 그린라이트 캠페인과 관련한 몇 가지 사항을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그린라이트는 인디 게임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

그린라이트를 통하여 스팀은 인디 게임 개발팀에게 문호를 개방 한 것 처럼 보이지만, 원래 그들의 목표에 따르면 ‘자신들의 업무량을 사용자에게 전가시키면서 민주적인 방식의 입점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있었다. 인디에 대한 배려는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있진 않다.

오히려 그린라이트 시스템은 전 세계에 존재하는 ‘스팀이 알지 못하는 중/대형 게임 개발사 및 퍼블리셔’와 인디 게임 신을 동일 선상에서 무한경쟁하게 만들어버렸다. 스팀은 자신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게임 개발사들을 자신들의 덩치와 무관하게 그린라이트를 통과하도록 했다.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캠페인의 수행 능력에 있어서 100인 정도의 제 3세계의 개발사와 북미의 2인 개발 팀은 당연히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지만, 그린라이트는 그러한 차이와 관계 없이 현재까지는 ‘무한경쟁에서 알아서 살아남아라’ 라는 식의 시스템이다.

그린라이트가 당신에게 허용하는 것은 동영상과 스크린샷 뿐이다

매우 공평하게도 그린라이트에 자신의 작품을 등록하는 모든 게임 개발사 혹은 개발자에게 허용 된 것은 동영상과 스크린샷, 그리고 게임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 뿐이다. 게임 데모 등록은 스팀에서 직접적으로 지원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동영상과 스크린샷만 가지고 짧은 시간 내에 사용자들을 훅(Hook)을 해야 한다. 개발자들에게 게임 자체의 내용보다는 그래픽 퀄리티에 신경을 쏟게 만드는 부분이 될 수 있다.

AnS_Greenlight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은 그린라이트에 투표를 하는 층이 ‘딱히 인디 게임에 호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아니다’라는 점이다. 그들은 대부분 동영상과 스크린샷을 보고 자신의 맘에 드는 게임을 가볍게 선택할 뿐 어떠한 대의명분 같은 것을 가지고 투표에 임하지 않는다.

스팀에서 유입되는 인원은 한계가 있다

AnS의 캠페인의 경우 처음 등록 후 약 10여일 동안이 인원 유입이 가장 많은 시점이었다. 그린라이트의 메인에 게임이 노출 될 때를 제외하면 하루 평균 유입 인원은 약 20여명에 불과하다.

적극적인 캠페인 운영을 위해서는 외부에서 그린라이트 캠페인으로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현재까지 다른 팀들에 의해 사용되는 방법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인디 게임 커뮤니티 홍보
  • 공모전 출품 및 수상
  • 기사 / 보도자료 / 인터뷰 / 리뷰
  • 데모 공개 및 홍보 이슈 생산(토렌트에 가짜 크랙 버전을 올리는 등)
  • 다른 마켓에 선 출시
  • 그린라이트 번들 같은 특수형태 번들 참여

물론 국내는 물론 해외 대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지 않으면 다득표는 소원해지는 일인 듯.

대책은?

그린라이트 캠페인을 위한 ‘외부 캠페인’의 경우가 가장 난감한 부분. 영미권 커뮤니티나 게이머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한 가장 큰 산-영어가 가장 넘기 힘들다는게 문제다. 국내 커뮤니티는 아쉽지만, 그 영향력이나 득표수 부분에 있어서 그리 크게 작용한다고는 이야기 하질 못하겠다.

동영상과 스크린샷은 최대한 잘 나온 녀석으로 뽑아서 올려야 한다. 동영상과 스크린샷만 보더라도 ‘우와아! 나 이 게임 해보고 싶어!’ 라는 생각이 드는 녀석들로 엄선해서 올려야 한다는 것-현재 등록되어있는 AnS는 이 부분이 안되지 않았나 싶다. 물론, 그렇다고 조작으로 사람 낚으려 해서는 곤란.

하지만, 위의 대책들을 다 무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대책은 단 하나 – 근사한 게임을 만들 것. 이것이 기본 전제가 되지 않으면 당연히도 어떠한 대책을 세우더라도 백약이 무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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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S 십자군 이야기(1) – 신의 뜻대로!(Deus vult!)

아미 앤 스트레테지는 중세 십자군을 배경으로 역사적으로 발생했던 사건들을 게임 상에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십자군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을 위하여 개발 참고 자료로 정리 중인 역사적인 부분에 대한 내용을 재구성하여 하나씩 연재 하겠습니다.

신의 뜻대로!(Deus vult!) – 클레르몽 교회회의와 군중 십자군의 출현

역사 연표

  • 1095년 11월 27일: 로마 가톨릭 교황 우르비노 2세가 클레르몽 교회회의에서 비잔틴 제국 지원 및 성지 탈환을 주장한다.
  • 1096년: 군중 십자군 준동한다. 은자 피에르의 선도로 성지 예루살렘을 향해 출발한다.
  • 1096년 10월 26일: 룸 술탄령의 클르츠 아르슬란 1세, 군중 십자군을 요격하는데 성공한다.

역사적 배경

클레르몽 교회회의

기원 후 1095년 11월 18일, 로마 가톨릭의 교황인 우르비노 2세(Pope Urban II)와 전 유럽의 로마 가톨릭 평신도를 대표하는 약 300명의 성직자들이 프랑스의 작은 도시 클레르몽에 모여들었다.  이른바 클레르몽 교회회의(Council of Clermont)라 불리운 이 회동이 절정에 이르른 1095년 11월 27일. 교황 우르비노 2세는 연설을 통하여 이슬람 세력에 위협을 받던 비잔틴 제국(Byzantine Empire)을 이교도로 부터의 위협에서 구해내고, 이교도들의 손아귀에 떨어져 있는 성지 예루살렘(Holy Land Jerusalem)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되찾아야 한다고 선언한다. 이에 군중들은 ‘신의 뜻대로!(Deus vult! – God wills it!’)라고 외치고 소리치며 열정적으로 화답했다.

교황의 연설에 가장 먼저 호응을 한 것은 유럽의 황제, 왕, 혹은 지방의 봉건 제후들이 아닌, 은자 피에르(Peter the Hermit)와 기사 고티에 생자부아(Walter Sans Avoir)를 중심으로 순진하고 신실한 순례자들, 신의 가호만을 바랄 수 밖에 없었던 빈민들, 그리고 자신의 부와 영광을 위해 신의 원정길에 오른 시골 기사, 용병들로 구성된 군중 십자군(People’s Crusade)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성지  탈환과 순례를 목적으로 출발한 군중 십자군은 말 그대로 오합지졸의 무리였다. 그들은 최종 목적지인 예루살렘의 위치조차 몰라서 그저 동쪽으로 진군했다. 군중 십자군은 규율이나 체계적인 규범을 갖춘 조직이 아니었기 때문에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을 지나면서 ‘신의 뜻대로’ 약탈, 방화, 살인 등의 범죄를 서슴없이 저렀으며 때문에 해당 지방의 군대에 의해 강제 진압을 당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군중 십자군이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 도착하였을 때 제국 황제 알렉시오스 1세(Alexios I Komnenos)는 이들이 제국 수도에서 폭동을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하고 이들을  배에 태워 이슬람 측의 영지로 서둘러 보내버렸다.


큰 지도에서 군중 십자군의 경로/The Route of the People’s Crusade 보기

한편, 아나톨리아(Anatolia – 지금의 터키)를 지배하는 자는 이슬람 국가인 룸 술탄령(Sultanate of Rum)의 술탄 킬리지 아르슬란 1세(Kilij Arslan I)였다. 그는 1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룸 술탄령의 권좌를 차지한 야심 많은 소년이었다. 콘스탄티노플의 정보 제공자들을 통하여 군중 십자군이 다가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의 나이는 아직 17세 밖에 되질 않았다.

그는 서쪽에서 다가오고 있는 거대한 무리의 순례객이 자신의 세력을 위험하게 만들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나톨리아의 북동쪽 지역에서 세력을 굳히고 있었던 현자 다니슈멘드(Ghazi ibn Danishmend)는 호시탐탐 킬리지 아르슬란 1세가 지배하고 있던 룸 술탄령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킬리지 아르슬란 1세는 현실적인 위험은 다니슈멘드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넌 군중 십자군의 행동은 킬리지 아르슬란 1세의 생각을 바꿔놓게 만들었다. 오합지졸에 숫자만 많은 것으로 보였던 그들은 니코메디아에 도착한 이후 수시로 주변의 마을들을 약탈하고 다녔으며 룸 술탄령의 부속 도시들에도 조금씩 야욕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1096년 9월 중순, 군중 십자군이 룸 술탄령의 수도 니케아(Nicaea)에 접근하기 시작하자, 젊은 술탄은 칼을 빼들고 그들을 맞아 싸울 준비를 한다.

주요 인물들

은자 피에르(? ~ 1115)

선동꾼이자 광신도인 은자 피에르는 클레르몽 교회회의에서 교황 우르비노 2세에 의해 십자군 선포가 일어나기 전 부터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며 성지 예루살렘을 이슬람으로부터 탈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녔다. 그는 성 베드로(St. Peter)가 자신의 꿈에 나타나, 성지 탈환이야 말로 신의 뜻이며 이를 이루기 위해 움직이라 하였다 주장했다.

클레르몽 교회회의에서 성지 탈환이 선언 된 이후, 그는 고티에 생자부아 등과 함께, 가난한 기사, 한탕을 노린 용병, 무지하고 가난한 민중들을 모아 군중 십자군을 결성하여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전형적인 선동꾼에 무책임한 리더십을 가진 그는 각지에서 트러블을 일으켜, 그를 따른 수많은 순례자들을 그들이 원하던 천국으로 이끌었으며, 수많은 사상자를 남기면서 동으로 동으로 이동하였다. 킬리지 아르슬란 1세로 인해 군중 십자군이 사실상 괴멸한 이후 제 1차 십자군에 합류하게 된다.

고티에 생자부아(? ~ 1096)

프랑스 북부 출신의 작은 영지의 기사였던 고티에 생자부아는 군중 십자군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은자 피에르와는 1096년 4월 쾰른에서 합류하였다. 하지만 합류 직후, 시간을 끄는 은자 피에르를 뒤로 하고 성급한 일부 순례자들과 함께 성지로 출발하였다. 이후 신성로마제국, 헝가리 왕국을 횡단하였으나, 베오그라드에서의 소속 부대원 일부와 순례자들의 약탈 행위로 인하여 보복을 받기도 하였다. 이후 1096년 7월 20일 뒤따라온 은자 피에르의 본대와 콘스탄티노플에서 합류하였으며, 비잔틴 제국 군대의 호위 속에 보스포로스 해협을 건너게 된다. 이후 룸 술탄군과의 교전에서 군중 십자군이 괴멸 할 때 전사한다.

비록 군중 십자군을 이끌면서 잦은 사고와 피해를 입기도 하였지만, 오합지졸의 집단을 이끌고 유럽 대륙을 횡단한 그의 능력은 인정 할 만 했다. 때문에 훗날 성전 기사단(Knights Templar)은 그를 명예, 용기, 겸손 등을 상징하는 인물로 추앙하기도 하였다.

알렉시오스 1세 콤네누스(1056 ~ 1118)

비잔틴 제국의 황제인 알렉시오스 1세는 계산적이고 술수에 능한 사람이었다. 투르크 민족 중흥으로 아나톨리아 대부분을 무슬림에게 빼앗기기는 하였지만, 그는 자신의 제국령이었던 이 땅을 되찾기 위하여 외세의 도움을 얻는 것 역시 주저하지 않았다. 이이제이(以夷制夷: 적을 적의 적으로 물리침)에 능하여 비잔틴 제국에 침략한 여러 외부 세력들을 막아내었다. 즉위 직후 노르만족의 침공에 대항하여 베네치아 공화국과 신성로마제국에 요청하여 이 침략을 막아내었으며, 중앙 아시아 지역의 페체네그 족의 침략에도 다른 야만족인 쿠만 족과 동맹을 통하여 이를 물리치기도 하였다.

로마 가톨릭의 수장인 우르비노 2세에게 친서를 보내 이슬람 세력으로 부터 비잔틴 제국을 구해달라고 한 것 역시 알렉시오스 1세이며, 이후 성지 탈환을 목적으로 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당도한 십자군들을 뒤에서 조종하여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고자 한다-하지만 대부분 그의 의도대로 진행되지 못하였다.

안나 콤네네(1083 ~ 1151)

비잔틴 제국의 황녀, 알렉시오스 1세와 유력귀족 두카스 가문 출신의 황후 이레네 두카이나(Irene Doukaina)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이다. 종교, 역사, 문학, 철학 등의 학문에 조예가 깊었다. 1118년에 아버지 알렉시오스 1세가 타계한 이후, 자신의 남편을 비잔티움 황제에 즉위 시키려 하지만 실패하고 케카리토메네 수녀원에 유폐된 이후 역사서인 «알렉시아드(Alexiad)»를 집필하게 된다.

킬리지 아르슬란 1세(1080 ~ 1107)

어린 나이에 술탄의 자리에 오른 킬리지 아르슬란 1세는 젊은 혈기와 당돌함으로 권모술수가 판치는 대 셀주크 제국의 술탄으로 자리매김한 인물이다. 룸 술탄령을 세운 아버지 술탄 술레이만이 1086년 사망하고 이후 말리크 샤의 가신으로 사실상의 포로 생활을 하였으나, 1092년 말리크 샤가 사망하자 룸 술탄령의 수도인 니케아로 돌아가 세력을 되찾았다. 이 때가 그의 나이 13세였다. 이후 룸 술탄령을 통치하면서 군중 십자군을 성공적으로 막아낸다.

권모술수와 암투가 난무했던 셀주크의 왕실에서 살아남은 킬리지 아르슬란이지만, 군중 십자군과의 전투에서의 승리에 심취한 나머지, 곧 이어진 제 1차 십자군의 공세에서는 허무하게 무너지고 만다. 하지만 이후 수 많은 전투를 치루면서 세력을 동쪽으로 계속 확장, 1107년 모술(Mosul)을 점령하기도 하지만 대 셀주크 제국의 메메드 1세(Mehmed I)의 지원을 받은 오르토키드(Ortoqids)와 리드완(Fakhr al-Mulk Radwan)의 반격으로 카부르 강 전투에서 패배하여 도망치는 도중 사망하게 된다.

결과

은자 피에르가 이끌던 군중 십자군은 종교적 광기와 집념이 뭉쳐진 거대한 집단이었지만, 무질서한 불한당 무리에 불과했기 때문에, 킬리지 아르슬란 1세의 정규군 앞에 맥없이 쓰러질 수 밖에 없었다. 니코메디아 공방전에서 괴멸적으로 패배한 군중 십자군의 대다수의 순례자들은 사망하거나, 살아남은 자들도 포로가 되어 노예로 팔려갔다.

하지만 이들은 그저 지나가는 한줄기 산들바람과 같은 존재였다. 은자 피에르가 전장에서 빠져나와 겨우 콘스탄티노플에 몸을 피신하였을 때, 실질적인 첫번째 십자군이 이제 막 제국 수도에 도착하고 있었다. 중갑으로 무장하고 장창을 장비한체 말을 타고 돌격하는 ‘기사(Kights)’가 전투의 중심이었던 중세 유럽의 최고 전투 집단이 이제 막 한숨 돌린 아나톨리아에 공포와 절망을 안겨 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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