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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개발과 빨간 차와 화재

어릴적 생각했던 나의 미래는 항상 8차선 고속도로 같은 것 이어서, 금 수저를 물고 태어나진 못했지만 내 능력으로 모든걸 해쳐 나갈 수 있을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물론 그 고속도로에서 뚜껑 열리는 외제 스포츠카와 긴머리 여성 그리고 다른 차를 빠르게 추월하며 달리는 것 같은 허황된 꿈을 꾸진 않았다. 하지만 노력하다보면 적어도 그 근처에 다가 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었다.

내 나이 서른 둘.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 보다는 남들에게 “이미 어떤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하는” 그런 나이다. 어릴적 꿈꾸던 그 어떤 사람은 3개 국어 쯤은 능숙하게 하고, 어느 작은 회사의 이사 정도는 되어있겠지 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늦바람 인디질로 10년 동안 모은 돈과 커리어를 들이붓고 있고, 계속되는 출시 연기, 거듭되는 연기로 벌을 받았는지, 결국 그 연기가 살고있는 집안에 가득찼다. 화재라는 방식으로…

반도의 CSI
이런것도 왔었다

중 2병 같은 이야길 하고 있는 것을 보신다면 다들 눈치 챘을 것 같다. 바로 개발자의 사춘기. 아니 여러번 왔다 갔으니 오춘기나 칠춘기 정도가 왔다. 그 시기는 여러번 왔고, 회사를 다닐 때는 여러 방법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리거나 해쳐 나갔는데, 약 2년 전부터 미묘하게 균형을 이룬 삶을 계속 살다보니 그냥 고민만 할 뿐 적극적으로 해쳐나갈 노력을 하지 않게 되고, 그렇게 B형 간염 같은 만성 질환이 되버린 그 고민들은, 슬럼프라는 동거인을 데려왔다.

사실 슬럼프에 빠진 것은 일년도 더 됐고, 자기 혐오와, 재미를 만드는 법에 대한 자신감 상실. 마른 몸에 툭 튀어나온 똥배 등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상황 반전을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정말 게임을 낼 생각이고, 일정이 박아 넣고 작업한다면, 회사에서 일할 때와 마찬가지로 반 강제적인 방법으로라도 슬럼프를 뛰어 넘을 수 있지 않을까? 같은 알량한 생각으로 시작 했다.

크라우드 펀딩을 하는 동안 내 기분은 고딩 시절 버스대신 걸어가던 때와 비슷했는데, 오만가지 잡 생각이 들어 한가지 생각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우리 게임을 기다려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기뻤고, “한국 인디 게임이니까” 같은 느낌으로 도와 준다 싶을 땐 “내가 심형래, 황우석처럼 행동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배고프고 힘들지만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든다” 같은 류로 비춰질 땐 “딱히 심하게 배고프고 힘들진 않은데…” 같은 생각을 하거나. 우리가 만들 게임을 기대한다기 보단 다른 외적인 이야기들을 좋아하시는구나 싶을땐 좀 씁쓸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한가지 생각에 멈추었고 그 생각이 발단이 됐다.

“부끄럽다”

미심적고 조금 아쉬운 부분들을 일단 프로젝트를 완료를 위해 두번째 작품 때 하기로 하고 미뤄두었다. “윈도우 8 세상에 적어도 윈도우 XP 같은 걸 만들겠다고 약속 해놓고, 윈도우 3.1이나 95를 쥐어 줄 생각이였구나. 적어도 98은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연기를 결정했다. 가장 맘에 안들었던 전투 부터 시작해서 게임 시스템을 거의 전부 엎고 있다. 사실 아직도 얼마나 더 남았는지 모르겠다.

어딜 가든 사람들이 게임 출시일을 물어본다. 나는 장난 삼아 지갑에서 2만원을 꺼내주는 시늉을 하며 가져가라 한다. 다들 왜 그렇게 게임이 안나오느냐고 묻는다. 취미 활동이라서 라고  대답했다. 뒤늦게 생각해보니 그동안 나의 행동과 나의 생각을 정확히 집어주는 단어 같다. “취미 활동”

취미 활동이기에 다듬을 수 있을 만큼 다듬고 있다. 취미 활동이기에 남들에게 간섭받고 싶지 않아 직접 사무실을 얻어 2년째 하고 있고. 취미 활동이기에 플랫폼으로 PC 버전을 생각할 수 있었다. 사업이었다면 일찌감치 출시했을 것이고, 돈을 조금이라도 아껴보기 위해 여기저기 창업 지원 센터를 기웃거리고, 창업 프로그램에 따라다니느라 시간을 썼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초창기에도 모바일 타겟으로 프로토타이핑을 여러개 하다 툭 던진 말도 “이런거 만들려고 회사 나온거 아니다” 였다. “조금 더 진지한거 해보자”, “어릴적 부터 이런걸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런 얄팍한 취미스러운 느낌으로 여기까지 왔다.

항상 혼자만 낭만 쫒는것 같아 가족이나 결혼할 분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곧 결혼할 놈이 취미활동이라니 결혼할 분에게 정말 미안할 따름이다 – 웹툰 미생 중(윤태호 작)

그렇게 나의 작업을 취미 활동으로 정의하고, “나는 그 동안 무엇을 해왔나?”, ”왜 슬럼프가 왔고 일의 능률이 떨어지는가?” 를 생각 해보았다. 얼른 끝내야 한다는 조급함때문에 집으로 일을 끌고 들어왔고, 일을 하는 것도 안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모습으로 매일 새벽에 주말까지 눈을 뜨고 있었다. 회사를 다니던 때와 관둔후를 비교해 보니 별 반 다를바 없는 삶이었고, 돈 까먹으며 놀고 있다는 생각이 스스로를 더 옥죄고  조급하게 했다. 그래서 일단 여유를 갖자 생각을 바꾸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선을 조금 다른 곳으로 돌려보기로 했다.

빨간 차를 샀다. 소형의 문짝 두 개에 좌석도 두 개인 쿠페다. 빨리 달리면 날개도 올라온다. 그리고 그 옆에는 긴 생머리의 나와 결혼할 여성도 타고 있다. 하지만 노랑 머린 아니다. 뚜껑도 열리진 않지. 첫 차로 좀 버겁기도 하고, 달리기 위한 차라 노면상태가 좋지 않으면 정말 천천히 다닌다. 누군가 긁을 까봐 어딜가도, 지붕이 있고 CCTV가 많이 있는 주차장에 돈내고 넣어둔다. 처음엔 매일매일 운전했고 주말마다 차를 몰고 가려고 했다. 물론 또 다른 취미거리가 생긴다고 해서 슬럼프가 무작정 해결 되진 않았다. 다만 30대 초반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할때 게임 개발, 인디 개발질 말고도 다른 이야기 꺼리가 생겼다는건 확실하고, 조금 더 삶이 생기가 생겼다.

운전은 삶에 생기를 준다.
운전은 삶에 생기를 준다

그리고 살던 집에 불이 났다. 옆 건물에 불이나서 옮겨 붙었다. 우리집에는 불이 붙진 않았지만, 집안 가득 연기가 차있었기 때문에 집안의 모든 곳이 엉망이 됬다. 안전 평가가 끝나기 전에는 들어가 살 수도 없고, 앞, 위, 옆,집들 덩그러니 비어있는 폐허 같은 곳에 혼자 들어가 있고 싶지도 않아서 한 두달은 밖에서 지내야 할 것 같다. 그냥 집에 불난김에 사무실에 아에 살면서 일이나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작년 여름에는 사무실 건물에서 가스 폭발도 있었지(한참 아래층이긴 했지만). 몇 달 후 결혼식도 잡혀있는걸 생각해보니. 가스 폭발에 큰 불. 그리고 로맨스! 해외 로케신(IGF China)까지 있었으니 정말 블록 버스터급 개발을 하는 것 같다. 자금 형편 상 블록 버스터급 게임을 못 만들지만, 개발 과정만은 블록버스터 급이다.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아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때문에 쓴 글이라 두서가 없다. 사실 그간 일어난 일들도 두서 없었고, 개발도 두서없이 진행됬다. 정신이 없었고 해야할일들도 많았고 결정되지 않은 일도 많았다. 그래서 아무것도 공개하지 못했다. 그래서 게임을 기다리시는 분들에게 개발은 하고 있다고, 이렇게 저렇게 하고있다고 이야기 해야겠기에 일단 글을 써보았다. 두문 분출했단 몇 달간의 개발물은 이제 조금씩 공개할 예정이다.

UMC의 노래 중 ‘삶은 다양한 방식으로 너에게 수작을 걸꺼야.’ 라는 가사처럼, 살다보면 별의별 일들을 겪게 된다. 아직 슬럼프는 끝나지 않았고. 생각보다 해야 할 일은 많아 개발도 지연되고 있고. 집에는 못 들어가는 와중에 예비군 훈련도 나오고. 전 국가 적으로 전기가 부족하다고, 저녁시간에 에어컨도 꺼버려 더위와 싸우고 있다. 그럴때 마다 평상심을 갖고 “이건 뭔 개수작이야?” 하고 지나가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P.S. 노파심에서 이야기지만 (당연히) 크라우드 펀딩으로 차 산건 아니다(……). 그건 다음에 쓸 “인디 게임 개발과 돈” 이라는 글에서 해명하도록 하겠다. ‘-’)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