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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Storia 03 – 바르바로사 프리드리히 1세

로마 시대 이후 프랑크 왕국이 성립되고, 이 왕국이 분열 되면서 생겨난  신성로마제국(a.k.a. 로마제국, 신성 제국, 독일 제 1제국) 은 서기 962년부터 1806년 약 85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중세 유럽 역사의  한 가운데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은 “제국”이라는 명칭이 주는 선입견-강력한 황제가 거대한 영토를 지배하고 수백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천지를 호령하는-과는 다르게 황제 / 고위 귀족 / 지방 영주 / 도시 국가 간의 권력 다툼으로 인하여 중세 기간 동안 강력한 황제권을 휘둘렀던 적은 없었던 것 처럼 보입니다. 거기에 더해 종교(로마 가톨릭)와의 권력 투쟁은 대를 거쳐 이어지며 서로 간에 크로스카운터를 날리며 싸우는 것이 일상이기도 했지요. 계몽주의 철학자인 볼테르1가 자조와 비아냥이 섞인 말투로 신성로마제국을 평가했던 것은 그리 이해 못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은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에 있지도 않으며, ‘제국’도 아닌 어떤 것이다. (Ce corps qui s’appelait et qui s’appelle encore le saint empire romain n’était en aucune manière ni saint, ni romain, ni empire.) – 볼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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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 인생의 첫 바르바로사는 이 녀석이었습니다. (..) – 출처: 나무위키

신성로마제국을 통치했던 여러 황제들은 모두들 인상적인 활동을 하긴 했습니다만, 프리드리히 1세 만큼 외모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긴 황제는 없지 않았나 하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붉은 수염으로 인하여 바르바로사(Barbarosa) 라는 별명으로 불린 프리드리히 1세는 드라마틱한 활동과 미스테리한 최후를 맞이한 황제였습니다.

그가 통치를 시작한 1152년 역시 그 이전의 황제들이 그러했듯 황제권의 확대를 위한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이탈리아의 도시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롬바르디아도시동맹2은 교황 알렉산데르 3세의 후원으로 프리드리히 1세의 이탈리아 남하를 적극적으로 막아내며 저항했습니다. 당연히 바티칸과의 사이는 나쁠 수 밖에 없었으며, 프리드리히 1세 역시 대립 교황(Antipope)을 내세우는 등 바티칸에 대하여 노골적인 저항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롬바르디아도시동맹의 강력한 저항으로 황제의 남하 시도는 저지되었지만, 프리드리히 1세는 독일 내에서의 황권 강화에 성공하였고, 폴란드, 헝가리, 덴마크 등을 굴복 시키기도 하였습니다. 통치 후기에는  사촌지간인 하인리히사자공3과 사이가 틀어지면서 황권이 위협받기도 하였습니다만, 사자공을 성공적으로 축출 하면서 황제권의 안정을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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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tecappio (Own work) [CC BY 3.0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3.0)], via Wikimedia Commons
이후 바티칸과의 관계 개선을 노린 것으로 보이는, 제 3차 십자군(살라딘이 예루살렘을 점령하면서 촉발 된 십자군)에 황제가 직접 참전하기로 결정하고 육로를 통하여 진군하던 중, 터키의 살레프 강을 도하하던 도중 사망하게 됩니다. 정확한 사인은 불명. 다만 현대의 연구에 의하면 심장마비 혹은 익사로 추정되는 듯 합니다.

잉글랜드 왕국의 사자왕 리처드 1세와 더불어서 중세 기사의 표본으로 일컬어지는 그의 이야기는 혼란스러웠던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게임에서 등장합니다. 그의 충실한 부하들과 함께 제국의 기틀을 다지고, 강력한 제국을 만들어보시기 바랍니다.


  1. 기쿠치 요시오, 《결코 사라지지 않는 로마, 신성로마제국》, 다른세상, 2010, 16쪽.

  2. 출처: 두산백과 – 롬바르디아도시동맹

  3. 출처: 두산백과 – 하인리히사자공

BIC 페스티벌에서 만납시다!

BIC_Fest Logo

올 해 9월, 부산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BIC Festival 2015(Busan Indie Connect Festival 2015)가 개최 됩니다. 국내외의 인디 게임 개발자들이 자신들의 게임을 게이머들에게 전시하고 교류하는 행사입니다.

PC, 모바일, 콘솔, VR, 보드 게임 등, 장르와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개성적인 게임을 소개하는 자리로 만들고자 하는 이 행사에, 파이드 파이퍼스 엔터테인먼트는 “아미 앤 스트레테지: 십자군”으로  전시 참가 합니다.

부산문화콘텐츠콤플렉스에서, 9월 10일 부터 9월 12일까지 3일간 진행되는 이 행사에서, 많은 분들이 AnS를 플레이 해 보시고 개발자들과 함께 게임에 대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BIC Festival  2015와 관련한 좀 더 자세한 정보는 아래 링크를 참고 하세요!

AnStoria 02 – 노르만과 시칠리아 왕국

시칠리아(Sicily) 섬은 이탈리아 최남단에 위치한 우리나라로 치면 제주도와 같은 섬입니다. 물론 제주도에 비하면 한참 크고 아름답습니다.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이 섬은 고대 로마 시절에는 대규모 밀 산지이자 공급지로 유명하기도 했습니다.

로마 멸망 이후에는 비잔틴 제국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가 기원후 9세기 경 부터 약 200년 간 이슬람의 영향권 안에 있었습니다. 이후 이슬람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유럽인들이 통치하기 시작한 것은 서기 1091년 노르만인들이 이곳을 점령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였습니다.1

Wikinger
바이킹의 잉글랜드 침공 (출처: 위키백과)

노르만인들의 기원을 쫓아올라가다보면 저나 여러분들께 익숙한 바이킹족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11세기의 노르만인들은 이미 오래전에 프랑스의 노르망디 지방과 잉글랜드 지역에 자리잡고 완전히 토착화 된 민족이었습니다. 이들의 조상이 약탈을 일삼 고 파괴! 혼돈! 망가!를 외치 는 시절이 분명 있었습니다만, 이미 이 때의 노르만인들은 상업에 종사하거나, 조상으로 부터 물려받은 넘치는 혈기를 십분 활용하여 각국의 용병으로 활동하며 생활하였습니다.

노르만인들 – 정확하게는 노르망디의 하급 귀족들이 시칠리아에 눈독들인 것은 그들의 조상으로 부터 내려 온 약탈 기질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와 잉글랜드는 봉건영주들의 기반이 안정적으로 잡혀 있는 상황이었고, 상속권이 없거나 봉토가 없는 하급 귀족들의 경우 어쨌든 야망을 충족 할 새 땅이 필요했습니다.

그렇다고 이미 지배가 확고한 유럽 지역의 로마 가톨릭 영주들을 공격하기에는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에 비하여 당시의 시칠리아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일단, 딱히 사이가 좋지만은 않은 비잔틴 제국과 이교도인 무슬림들이 시칠리아를 지배하고 있었고, 때문에 교황으로 부터 지지를 받기도 좋은 상황이었죠. 유럽의 다른 영주들 역시 애초에 자기들의 영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곳을 침공한다고 해서 노르만인들을 터치 할 명분도 없었지요.

시칠리아에 대한 적극적인 정복 사업을 벌인 자는 로베르 기스카르(Robert Guiscard) 였습니다.2 열정적으로 비잔틴 제국을 공격하고 땅을 빼앗았는데요, 노년의 사망 이유 역시 비잔틴 침공 중 병사였을 정도였습니다. 그의 아들 중 하나였던 보에몽 1세는 이후 제 1차 십자군의 주요 지휘관 중 하나로 활약을 합니다 – 그리고 전설적인 악명3을 떨치게 되지요.

루지에로 2세
루지에로 2세 © Pied Pipers Entertainment

아직 공작위(County)에 불과했던 시칠리아가 왕국(Kingdom of Sicily)이 된 것은 루지에로 2세(Roger II of Sicily)의 업적입니다. 로베르 기스카르의 동생이었던 루지에로 1세의 아들이었던 루지에로 2세는 자신의 사촌들이었던 로베르 가스카르의 자녀들을 모두 제치고 영지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였을 뿐만 아니라,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로마 가톨릭 교황 간의 알력 다툼에 개입하여 어부지리로 자신의 왕국을 건국하기까지 합니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왕국을 만든 왕들이 모두 그러하듯 루지에로 2세 역시 안정적인 내정, 권모술수에 능한 외교, 강력한 군사력과 열려있는 사고를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루지에로 2세 시절의 시칠리아의 해군은 사실상 아드리아 해와 그 주변의 재해권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었는데, 이 해군을 운용하는 총사령관은 이슬람 왕조인 파티마 왕조 등에서 복무한 아미르(Amir / Emir – 아랍어로 사령관, 총독을 의미) 였습니다. 또한 왕국 행정을 담당하는 인사들 중에서 그리스인과 아랍인의 비중 또한 높았다고 합니다.

그는 세 번의 결혼 생활 동안 9명의 자녀들과 수명의 사생아를 두었습니다.4 이 중 주목 할 만한 자녀는 막내였던 시칠리아의 콘스탄체(Constance, Queen of Sicily) 입니다. 막내딸이긴 했지만 루지에로 2세가 생전에 그의 모습을 본 적은 없습니다. 그가 태어나기 몇 달 전에 루지에로 2세가 사망했기 때문이지요.

콘스탄체
콘스탄체 © Pied Pipers Entertainment

평생 친부를 본 적이 없던 이 공주님은 이후 시칠리아 왕국의 최후의 상속녀로 신성로마제국의 황태자이자 붉은 수염으로 유명한 프리드리히 1세(Frederick Barbarossa)의 아들인 하인리히 6세(Henry VI)와 결혼하여 황후이자 시칠리아의 여왕으로 일생을 보내게 됩니다. 물론 이후의 시칠리아 왕국은 신성로마제국의 호펜슈타우펜 왕가가 지배하게 되었지요.

게임에서는 시칠리아의 강력한 군주였던 루지에로 2세를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게임의 재미를 위해서 잔뜩 너프(Nerf5)된 상태로 나오기 때문에 강력한 노르만인의 힘과 기상(…)을 느끼긴 힘들 수 있겠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 딸인 콘스탄체의 애교를 보시면서 게임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1. 출처: 두산백과 – 시칠리아 섬

  2. 출처: 두산백과 – 로베르 기스카르

  3. 보에몽 1세는 제 1차 십자군 지휘관 중 가장 많은 구설을 달고 다녔습니다. 그 중 가장 악명 높은 구설은 “이교도를 재료 삼아 식인”을 했다는 이야기이지요.

  4. 출처: Roger II of Sicily – Wikipedia(EN)

  5. 너프의 유래를 알고 싶으신가요? –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