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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Storia 02 – 노르만과 시칠리아 왕국

시칠리아(Sicily) 섬은 이탈리아 최남단에 위치한 우리나라로 치면 제주도와 같은 섬입니다. 물론 제주도에 비하면 한참 크고 아름답습니다.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이 섬은 고대 로마 시절에는 대규모 밀 산지이자 공급지로 유명하기도 했습니다.

로마 멸망 이후에는 비잔틴 제국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가 기원후 9세기 경 부터 약 200년 간 이슬람의 영향권 안에 있었습니다. 이후 이슬람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유럽인들이 통치하기 시작한 것은 서기 1091년 노르만인들이 이곳을 점령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였습니다.1

Wikinger
바이킹의 잉글랜드 침공 (출처: 위키백과)

노르만인들의 기원을 쫓아올라가다보면 저나 여러분들께 익숙한 바이킹족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11세기의 노르만인들은 이미 오래전에 프랑스의 노르망디 지방과 잉글랜드 지역에 자리잡고 완전히 토착화 된 민족이었습니다. 이들의 조상이 약탈을 일삼 고 파괴! 혼돈! 망가!를 외치 는 시절이 분명 있었습니다만, 이미 이 때의 노르만인들은 상업에 종사하거나, 조상으로 부터 물려받은 넘치는 혈기를 십분 활용하여 각국의 용병으로 활동하며 생활하였습니다.

노르만인들 – 정확하게는 노르망디의 하급 귀족들이 시칠리아에 눈독들인 것은 그들의 조상으로 부터 내려 온 약탈 기질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와 잉글랜드는 봉건영주들의 기반이 안정적으로 잡혀 있는 상황이었고, 상속권이 없거나 봉토가 없는 하급 귀족들의 경우 어쨌든 야망을 충족 할 새 땅이 필요했습니다.

그렇다고 이미 지배가 확고한 유럽 지역의 로마 가톨릭 영주들을 공격하기에는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에 비하여 당시의 시칠리아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일단, 딱히 사이가 좋지만은 않은 비잔틴 제국과 이교도인 무슬림들이 시칠리아를 지배하고 있었고, 때문에 교황으로 부터 지지를 받기도 좋은 상황이었죠. 유럽의 다른 영주들 역시 애초에 자기들의 영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곳을 침공한다고 해서 노르만인들을 터치 할 명분도 없었지요.

시칠리아에 대한 적극적인 정복 사업을 벌인 자는 로베르 기스카르(Robert Guiscard) 였습니다.2 열정적으로 비잔틴 제국을 공격하고 땅을 빼앗았는데요, 노년의 사망 이유 역시 비잔틴 침공 중 병사였을 정도였습니다. 그의 아들 중 하나였던 보에몽 1세는 이후 제 1차 십자군의 주요 지휘관 중 하나로 활약을 합니다 – 그리고 전설적인 악명3을 떨치게 되지요.

루지에로 2세
루지에로 2세 © Pied Pipers Entertainment

아직 공작위(County)에 불과했던 시칠리아가 왕국(Kingdom of Sicily)이 된 것은 루지에로 2세(Roger II of Sicily)의 업적입니다. 로베르 기스카르의 동생이었던 루지에로 1세의 아들이었던 루지에로 2세는 자신의 사촌들이었던 로베르 가스카르의 자녀들을 모두 제치고 영지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였을 뿐만 아니라,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로마 가톨릭 교황 간의 알력 다툼에 개입하여 어부지리로 자신의 왕국을 건국하기까지 합니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왕국을 만든 왕들이 모두 그러하듯 루지에로 2세 역시 안정적인 내정, 권모술수에 능한 외교, 강력한 군사력과 열려있는 사고를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루지에로 2세 시절의 시칠리아의 해군은 사실상 아드리아 해와 그 주변의 재해권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었는데, 이 해군을 운용하는 총사령관은 이슬람 왕조인 파티마 왕조 등에서 복무한 아미르(Amir / Emir – 아랍어로 사령관, 총독을 의미) 였습니다. 또한 왕국 행정을 담당하는 인사들 중에서 그리스인과 아랍인의 비중 또한 높았다고 합니다.

그는 세 번의 결혼 생활 동안 9명의 자녀들과 수명의 사생아를 두었습니다.4 이 중 주목 할 만한 자녀는 막내였던 시칠리아의 콘스탄체(Constance, Queen of Sicily) 입니다. 막내딸이긴 했지만 루지에로 2세가 생전에 그의 모습을 본 적은 없습니다. 그가 태어나기 몇 달 전에 루지에로 2세가 사망했기 때문이지요.

콘스탄체
콘스탄체 © Pied Pipers Entertainment

평생 친부를 본 적이 없던 이 공주님은 이후 시칠리아 왕국의 최후의 상속녀로 신성로마제국의 황태자이자 붉은 수염으로 유명한 프리드리히 1세(Frederick Barbarossa)의 아들인 하인리히 6세(Henry VI)와 결혼하여 황후이자 시칠리아의 여왕으로 일생을 보내게 됩니다. 물론 이후의 시칠리아 왕국은 신성로마제국의 호펜슈타우펜 왕가가 지배하게 되었지요.

게임에서는 시칠리아의 강력한 군주였던 루지에로 2세를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게임의 재미를 위해서 잔뜩 너프(Nerf5)된 상태로 나오기 때문에 강력한 노르만인의 힘과 기상(…)을 느끼긴 힘들 수 있겠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 딸인 콘스탄체의 애교를 보시면서 게임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1. 출처: 두산백과 – 시칠리아 섬

  2. 출처: 두산백과 – 로베르 기스카르

  3. 보에몽 1세는 제 1차 십자군 지휘관 중 가장 많은 구설을 달고 다녔습니다. 그 중 가장 악명 높은 구설은 “이교도를 재료 삼아 식인”을 했다는 이야기이지요.

  4. 출처: Roger II of Sicily – Wikipedia(EN)

  5. 너프의 유래를 알고 싶으신가요? – 링크

아미 앤 스트레테지 시나리오 모드 개발 기록

아미 앤 스트레테지: 십자군의 초기 기획을 또 한 번 돌이켜보자면, 게임은 단순한 전략 시뮬레이션의 게임 매커니즘만 가지고 있는 상태였을 뿐이었다. IGF 2012 제출 버전이 개발 완료되었을 무렵에는, 팀 내에서는 이제 게임 디자인의 구현은 완료되었으니 ‘콘텐츠’를 추가하면 게임의 완성은 마무리 단계 라는 인식이 있었었다.

하지만 익히 알려졌다시피(…), IGF 2012 참가크라우드 펀딩 캠페인, 스팀 그린라이트 캠페인이 진행되면서 게임 디자인과 메커니즘에 대한 대대적인 수정 작업이 진행되었고, 이후 2013년과 2014년은 게임 시스템의 확장과 테스트, 수정으로 점철된 나날의 연속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게임 디자인의 현실 구현 이후’의 업무였던 시나리오 모드의 진행 역시 지속적으로 미뤄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거의 2년에 걸쳐 ‘게임에 넣어야 할 것’으로 결정 된 확장 시스템들의 구현이 얼추 완료된 시점이었던 2014년 10월이 되어서야 아미 앤 스트레테지: 십자군의 주요 콘텐츠라고 할 수 있는 시나리오 모드에 대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나리오 모드에 대한 작업은 현재(2015년 1월)에도 계속 진행 중에 있다.

시나리오 모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을 때, 초기의 비전(Vision)은 판을 깔아두고 플레이어들이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간다 였었다. 따라서 원래의 시나리오 모드는 역사적 연도에 맞춰 스테이지를 세팅하고 이를 플레이어가 그냥 플레이 하는 형태에 불과했다. 이 판이 깨진 계기는 (다른 모든 문제들이 그러했듯) IGF China 2012 참가 였다.

게임 시스템에 적응을 완료한 플레이어들이 지속적으로 게임을 즐기기 위한 방편으로써의 기존 시나리오 모드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곤란한 부분이 있었다. 판을 깔아두고 스스로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플레이어의 선택 하나 하나에 게임의 세계가 반응을 할 필요가 있었지만, 그렇게 정교한 세계를 만들기에 게임의 볼륨은 지나치게 작았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것이 개별 스토리를 가진 시나리오 모드였다. 이 개선 시나리오 모드의 대략적인 스펙은 다음과 같았다.

  • 플레이어는 시나리오에서 특정한 역할(Role)을 맡는다.
  • 트리거에 의해 스토리 진행을 위한 이벤트가 실행된다.
  • 트리거에 의해 플레이어는 퀘스트를 받고 수행 할 수 있다.

선형 진행, 비선형 진행

첫 번째 시나리오인 룸 술탄령(Sultanate of Rum) 시나리오는 플레이어가 가장 처음 시작하는 플레이가 될 것이기 때문에 전반적인 게임 시스템의 설명에 주안을 두었다.

때문에 게임은 어떻게 보면 지나칠 정도로 선형 진행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선택은 제한적이고 플레이는 되도록이며는 개발팀이 의도한 방향으로 진행 될 수 있도록 맵 세팅과 연구 과제 한계를 지정해 놓았다.

  • 맵 세팅은 현재 시나리오에서 플레이어가 진출 할 수 있는 영역을 암묵적으로 그어놓는 역할을 한다. 상대 세력의 규모, 도시 연결 라인, 방어력이 강한 도시의 배치 등을 이용한다.
  • 연구 과제 한계는 맵 세팅과 더불어 물리적인 한계를 지정하는데 사용한다. 특정 왕국을 타파하기 위해 필요한 연구는 현재 시나리오에서 사용 못하게 하는 형태. 이는 플레이어의 점진적 학습을 위해서도 필요한 부분이었다.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 부터는 선형 진행이 아닌 비선형 진행을 유도하였다. 메인 스토리는 플레이어에 대한 제약 조건과 시나리오의 최종 목표를 제시하는 용도로 사용 되고, 기타 중간의 이벤트들을 통하여 지루해질 수 있는 게임 내에서 긴장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도록 시나리오의 전개를 구성하였다. 플레이어는 주어지는 퀘스트를 진행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으며, 그에 따른 결과 역시 게임 내 환경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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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 는 아닙니다만.

스토리 그리고 고증

역사를 소재로 창작물을 만든다는 것은 분명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개인적으로 다른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언급을 할 때는 실제 역사에 대하여 얕은 지식으로 함부로 재단을 하는 것은 옳진 않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핑계에 불과 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소규모 제작팀에서 타 문화의 역사를 소재로 한 게임을 만들 때 학술적인 수준의 자료 수집과 정리는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단순히 중세 십자군과 제반 역사에 대한 2차 자료의 양이나 접근 문제 이전에, 우리의 개발 능력의 범위를 훨씬 벗어난 수준의 일이라는 것이 문제였다-제대로 한다고 하면 자료 수집과 정리, 이에 대한 해석을 내려 줄 전문 스탭이 필요한 영역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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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스토리는 정사에 바탕을 둔 정극 스타일 보다는 당시의 정세를 배경으로 한 코미디로 결정되었다. 물론 코미디라고 해서 배경 지식에 대해 등한시하거나 결코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패러디와 오마쥬를 통하여 이 게임의 스토리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막고자 하는 의도는 분명히 있다.

요즘의 국제 정세를 봐서는 패러디와 풍자 역시 공격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 있어서는 등골이 서늘한 감이 없진 않지만. (…)

시나리오 시스템

아미 앤 스트레테지: 십자군의 시나리오 시스템은 기존의 게임들에 대비하여 몇 가지 특징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 이전 시나리오의 게임 플레이는 제한적으로 이후 시나리오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 첫 번째 시나리오의 엔딩 시점에 도달했을 경우, 이와 관련한 이벤트가 발생한다.
  • 앞서 언급한 연구 제한과 더불어서 시나리오 진행 때 마다 게임 내의 추가적인 시스템들이 하나 씩 해금 된다. 이는 지나치게 다양한 종류의 시스템을 순차적으로 적응 하도록 하는 이유와 더불어, 초반에 콘텐츠 소모를 막기 위한 장치로 작동한다.
  • 이를 위하여 각 시나리오는 ‘주도적으로 사용해야 할’ 게임 시스템이 지정되어 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교역과 경제 시스템, 세 번째 시나리오는 종교 회의와 그룹 등.
  • 각 시나리오에는 시나리오 전용의 이벤트와 공용 이벤트가 공존한다. 공용 이벤트는 시나리오 및 전체 캠페인 지도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이벤트로, 게임 플레이의 연속성을 경험하게 하기 위한 장치로 기획 되었다.

시나리오의 전개에 있어서 주안점을 두는 것은 ‘경험의 확장’이다. 지속적으로 관심을 유도하고 플레이를 끝까지 마무리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미 앤 스트레테지: 십자군의 시나리오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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