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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 앤 스트레테지 테스트 플레이 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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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 플레이 기록 – 2012. 8. 8. 오전 10:00 ~ 오후 12:30

1) 테스트 시나리오: 십자군 대 성전(Crusades vs. Jihad) – 1170년 6월
2) 선택 국가: 예루살렘 왕국
3) 시나리오 클리어 조건: 전 지역 점령.

  • 1170년 6월: 예루살렘 왕국에 성인이 나타나다. 파티마 왕조와 관계 개선으로 교역 시작.
  • 1170년 7월: 성인이 왕국에 기부품을 하사하다. 신규 장수 고용(이사벨라 1세). 트리폴리 백작령이 군사 동맹을 제안하지만, 다른 주변 국가를 자극할까 두려워 거절한다.
감사하게 받습니다. (넙죽)
  • 1170년 8월: 성인이 왕국을 떠나다. 다마스커스 술탄령에 전쟁 선포.
  • 1170년 11월: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십자군을 선포하다. 십자군 선포로 인하여 관계가 나빠진 파티마 왕조와의 교역을 유지하기 위하여 파티마 왕조에 선물을 보냄.
  • 1170년 12월: 예루살렘 왕국은 다마스커스 술탄령의 요새 무타를 점령. 첫번째 공성전 승리. 대 셀주크 제국과의 관계가 심상치 않지만 일단 무시하기로 한다.
  • 1171년 1월: 대 셀주크 제국이 예루살렘 왕국과 안티옥 공작령에 선전포고. 예루살렘 왕국은 두 개의 전선에서 싸워야 한다.
  • 1171년 2월: 지중해 동부 연안, 아나톨리아 지역 등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전쟁이 발생한다. 예루살렘 왕국은 계속 된 전쟁으로 자본이 부족해지자 대상에게서 자금을 대출한다.
빚으로 땅따먹기 하는건 예나 지금이나…
  • 1171년 3월: 예루살렘 왕국이 다마스커스 술탄령의 마을 보스트라를 점령.
  • 1171년 6월: 파티마 왕조와 군사 동맹을 체결하다.
  • 1171년 8월: 3개월 간의 공성전 끝에 다마스커스 술탄령의 수도 다마스커스를 함락시키다. 포로들은 고용 비용이 없는 관계로 모두 방면.
  • 1171년 9월: 에데사 백작령에 의하여 대 셀주크 제국 멸망. 제국의 도시 쿠파에 무혈 입성. 비잔틴 제국이 조공을 바칠것을 요구하지만 대차게 차 버린다. 신생 왕국인 시핀 왕조에 선전포고.
  • 1171년 10월: 비잔틴 제국이 예루살렘 왕국에 전쟁을 선포한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서 직접적인 충돌은 없을 듯. 비잔틴 제국이 주변의 친구들에 소홀한 탓에 추가로 전쟁을 선언 할 국가도 없을 듯 하다.
1171년의 지중해 동부의 정세(하단 하늘색이 예루살렘 왕국)
  • 1172년 2월: 이슬람-수니파에서 지하드를 선포. 이슬람-수니파를 국교로 하는 왕국들과 외교 상황이 악화되었다.
이슬람-수니파의 지하드 선포.
  • 1173년 3월: 러시아 공국에 의하여 장기 왕조 멸망. 북방의 위협이 점차 사실이 되어가는건가?
  • 1172년 4월: 사이프러스 왕국이 예루살렘 왕국에 선전포고. (야!) 대항으로 안티옥 백작령과 군사 동맹을 체결한다. 시핀 왕조의 멸망. 포로로 잡힌 장기(…)를 고용함.
  • 이 와중에 파티마 왕조는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다. 주변 도시들은 비잔틴 제국의 통제에서 벗어나 무정부 상태가 되어버림.
  • 1172년 5월: 일단 휘하 장군들을 훈련시키면서 상황을 관망 중. 같은 십자군 국가인 트리폴리 백작령과, 안티옥 공작령을 치자니, 로마 가톨릭 교회의 후환이 두렵고, 이교도 국가인 파티마 왕조를 치려고 생각하니 교역을 무시 못하는 지라, 고심 중.
  • 1172년 6월: 콘스탄티노플 주변 도시들에 군소 세력들이 정권을 잡음.
  • 1172년 9월: 북아프리카의 맹주 파티마 왕조, 동유럽의 맹주 러시아 공국.
  • 1172년 10월: 돈이 남아도니 교단에 특별 기부나…
  • 1172년 11월: 성인이 다시 한번 왕국에 오셨도다. 파티마 왕조에 전쟁 선포.
  • 1173년 3월: 전쟁 4개월 만에 파티마 왕조의 국경 마을 압츠나다인 점령.
  • 1173년 6월: 아라비아의 대도시 마크나 점령. 비잔틴 제국이 파티마 왕조에 의하여 멸망하다.
  • 1173년 10월: 도움도 안되는 로마 가톨릭은 또 한번 십자군을 선포하다.
  • 1174년 4월: 파티마 왕조 멸망, 예루살렘 왕국은 북아프리카 지역을 평정한다.
  • 1174년 5월: 예루살렘 왕국이 북아프리카 원정에 힘 쓰는 동안, 안티옥 공작령은 지중해 지역을 평정. 예루살렘 왕국의 북진 정책에 방해물이 되기 시작함.
  • 1174년 7월: 일단 트리폴리 백작령을 복속 시키기 위해 전쟁을 선포.
  • 1174년 8월: 트리폴리 백작령 멸망. 로마 가톨릭 교황은 예루살렘 왕국을 비난한다.
1174년 8월: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타인을 정복한 예루살렘 왕국 – 북진의 길이 동맹국인 안티옥 공작령에 막혀버렸다.
  • 1174년 11월: 안티옥 공작령 멸망. 로마 가톨릭 교황은 예루살렘 왕국을 비난하지만, 헌금으로 쌓아둔 신뢰는 그렇게 쉽게 금이 가지 않는다.
  • 1174년 12월: 예루살렘 왕국이 북아프리카, 팔레스타인, 시리아, 지중해 지역을 완전히 장악한다.
  • 1175년 1월: 헝가리 왕국와 동맹 및 교역. 북방 지역에 든든한 우방을 가지게 되다.
  • 1175년 5월: 스마이나 왕국 멸망. 이제 헝가리 왕국인가? 에데사 백작령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임.
  • 1175년 6월: 헝가리 왕국으로 진격 시작.
  • 1175년 7월: 에데사 백작령이 먼저 우리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선물로 회유하여 일단 휴전 협상을 마무리 함.
  • 1176년 1월: 헝가리 왕국 멸망. 몽골과 교역 시작 및 군사 동맹 체결.
  • 1176년 2월: 러시아 공국 멸망. 남은 것은 에데사 백작령.
  • 1176년 10월: 에데사 백작령 멸망, 지중해 동부 지역에 신의 제국을 건설하다.

– 게임 종료 –

주거문화와 스타트 업

실리콘 밸리의 전설들의 시작은 보통 이런식으로 시작한다.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재기발랄한 중산층 가정의 10대가 차고, 창고, 다락방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하여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전설이 국내에서도 발현되기를 바라는 많은 지도자들이 대한민국의 빌 게이츠라던가 한국형 스티브 잡스 양성에 두 팔 걷어 붙였다 은근 슬쩍 포기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왜 대한민국에는 실리콘 밸리의 성공 신화가 생길 수 없는가?

BrendelSignature at en.wikipedia

이유는 간단하다. 대한민국에서 차고와 별도의 창고, 다락방이 있는 집을 가지고 있다면 그 집의 자녀는 스타트 업이 아니라 아버지 회사의 임원이 되기 위한 코스를 밟고 있을테니깐. 아파트 주거가 중심인 대한민국 주거문화에서는 실리콘 밸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룰 수 없다. 아파트는 작업을 위한 독립 공간을 만들기에 대단히 부적절한 건축물이다.

갑작스럽게 주거문화 이야기를 하는 것은, 곧 있으면 파이드 파이퍼스의 사무실 임대료를 내야 할 때가 도래한 것과는 무관하다. 그러니 그냥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좋을 듯 하다. (아마도)

 

점, 선, 그리고 면

간혹 몇몇 하드코어 게이머들은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게임에 비주얼은 전부가 아니다. 게임 시스템이 정말 재미있게 꾸며져 있다면 게임은 점, 선, 그리고 면으로만 이루어져 있어도 재미있다. 심지어는 텍스트만으로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재미있을 것이다.

언뜻 들어보면 그럴듯하다. 우리 팀의 경우에도 ‘이 프로토타입은 일단 점, 선, 면으로 만들지만 이것 만으로도 재미있어야 돼!’ 같은 가오(…) 잡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정말일까?

점, 선, 면으로도 재미있잖아요? (벌써 세번째 우려먹는 Pong)

위와 같은 이야기는 사실 게임 비주얼의 ‘미적 가치’만을 따진다. 그러나 게임 비주얼은 미적 가치 이외에도 ‘기능적 가치’가 포함된다. 게임은 단순히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닌 상호작용(Interactive)에 기반을 한다. 때문에 상호작용에 필요한 기능들(Interface)에 대한 설계가 필수적이며, 이는 결국 상호작용 도구 중 하나인 시각 정보 표시 부분 역시 같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넓은 의미에서 화려한 3D 그래픽이든, 점, 선, 면이든, 텍스트이든 간에 이러한 것들은 비주얼을 표현하는 ‘방식’의 문제일 뿐이다. 어떤 방식을 사용하든 비주얼의 기능적 가치를 간과한다면 결국 그 게임 비주얼의 질(Quality)를 망치는 요인이 된다.

자, 그렇다면 텍스트나 점, 선, 면 등을 이용하여 간결하게 표현하는 비주얼의 제작의 난이도가 쉬운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프로젝트 경험상 특정 방식을 사용하는 것과 비주얼의 질을 높이는 일은 서로 상관관계가 없다. 텍스트를 이용을 하든, 점, 선, 면의 단순한 도형의 조합이든, 화려한 수준의 일러스트나 3D 그래픽을 이용하든 간에 그 표현 방식의 극의에 도달하는 것은 ‘똑같이 어렵다’.

뭐든 잘 만드는 건 어려운 법이다(왼쪽부터 Skryim, Superbrothers: Sword & Sworcery EP)

부디 텍스트 어드벤쳐라고 비주얼을 쉽게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그 텍스트 어드벤쳐가 굉장해 보였던 것은 텍스트를 이용한 비주얼 표현의 극의에 달했기 때문이지, 단지 게임 시스템만 훌륭해서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