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S 십자군 이야기(4) – 천상의 왕국

살라딘과 예루살렘 왕국의 분쟁.

역사 연표

  • 1174년: 살라딘, 아이유브 왕조를 수립한다. 예루살렘 왕국은 아모리 1세가 사망하고 ‘문둥이 왕’ 보두앵 4세 왕위를 계승한다.
  • 1177년 11월 25일: 몽기사르(Montgisard) 전투. 보두앵 4세가 살라딘의 대군을 물리치다.
  • 1179년 4월 10일: 바니아스(Banias)에서의 소규모 충돌. 보두앵 4세가 살라딘 군에 포위되지만, 토론의 귀족 험프리 2세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탈출한다.
  • 1179년 6월 10일: 마-아유(Marj Ayyun) 전투. 바니아스에서의 설욕을 위한 출전이었지만 보두앵 4세가 살라딘에 대패. 다수의 예루살렘 왕국 측 고위 인사들이 포로가 되고, 이후 몸 값을 지불하고 풀려난다.
  • 1182년: 살라딘 알레포를 수중에 넣다.
  • 1185년 3월 16일: 보두앵 4세가 지병인 한센병으로 인하여 사망. 조카인 보두앵 5세 즉위한다.
  • 1186년 8월: 보두앵 5세 사망. 보두앵 5세의 어머니인 시빌라와 그의 남편인 기 드 뤼지냥이 공동 왕으로 즉위한다.
  • 1186년: 살라딘 장기 왕조와 모술을 자신의 영향권 안에 두다. 르노 드 샤티옹이 예루살렘 주변의 이슬람 순례객을 약탈하며 살라딘을 자극한다.
  • 1187년 3월 13일: 살라딘, 성전(Jihad) 선포. 르노 드 샤티옹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이리라 맹세한다.
  • 1187년 7월 4일: 하틴(Hattin) 전투에서 살라딘이 승리. 르노 드 샤티옹과 기 드 뤼지냥이 포로로 잡힌다. 르노 드 샤티옹은 살라딘 앞에서 즉결 처형 당한다.
  • 1187년 9월 20일: 예루살렘 공방전 시작.
  • 1187년 10월 2일: 예루살렘 공방전 종료. 예루살렘측의 항복으로 살라딘의 승리.

역사적 배경

1174년. 누레딘이 사망하고 살라딘이 이집트 지역의 술탄으로 올라서지만,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의 정세는 여전히 전망이 불투명하기만 했다. 누레딘이 사망한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예루살렘 왕국의 국왕인 아모리 1세(Amalric I of Jerusalem)가 장기 왕조에 대한 원정 도중 사망하게 된다. 아모리 1세의 후임으로 예루살렘 왕국의 국왕이 된 자는 아모리 1세의 아들인 보두앵 4세(Baldwin IV of Jerusalem)였다.

즉위 때 13세 살에 불과했던 그는, 당시로서는 불치의 병인 한센병(나병)을 앓고 있었다. 현대에서는 의학적으로 치유가 가능한 병이지만, 중세시대의학으로는 아직 한센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보두앵 4세는 건강상의 치명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왕국을 지켜내기 위해 열정적으로 활동한다. 성치않은 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장에 나가 군사를 진두지휘 하면서 살라딘과의 일전도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세는 보두앵 4세의 초인적인 열정으로 극복할 수 있을 만큼 호락호락한 상황이 아니었다. 일찌감치 이집트를 장악한 살라딘은 시리아를 손에 넣기 위하여 한발 한발 착실하게 나아가고 있었고, 예루살렘 왕국 역시 그의 시야 안에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은 1177년 11월 25일 항구 도시 아스칼론 근처의 몽기사르에서 충돌한다. 전투 당시 군사력은 살라딘 측이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예루살렘 왕국은 475기의 템플 기사(Knight Templar)와 수천의 보병이 전부였고, 이에 대항하는 살라딘의 군사는 2만 6천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스칼론 주변에 대한 초토화 작전을 위하여 진영을 넓게 분산시킨 살라딘의 계책이 문제가 되었다. 475기의 템플 기사단과 수 천의 보병으로 이루어진 예루살렘 왕국군은 방어가 얇아진 적진 중심으로 단번에 돌격 해 들어갔고, 돌격 기세에 눌린 살라딘은 결국 중심부가 돌파 당한다. 병력이 순식간에 와해 되면서, 살라딘 마저 포로로 잡힐 뻔 하지만 그는 가까스로 전장에서 탈출한다.

몽기사르 전투

몽기사르 전투에서의 패배의 여파로 살라딘은 예루살렘 왕국에 대한 군사 작전을 당분간 엄두를 내지 못한다. 몽기사르 전투에서 2년이 지난 1179년이 되어서야, 살라딘은 보두앵 4세에게 설욕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1179년 4월 10일 골란 고원에 위치한 바니아스를 이동 중이던 보두앵 4세와 살라딘의 소규모 군사가 충돌한다. 이 때 보두앵 4세가 사로잡힐 뻔 하지만, 수행원 중 하나인 험프리 2세(Humphrey II of Toron)의 헌신적인 희생 덕분에 자신의 본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살아돌아온 보두앵 4세는 살라딘에 대한 복수전을 천명하고, 이후 두 달 뒤인 1179년 6월 10일 군사를 출정하지만, 이번에는 몽기사르 전투 때와 달리 준비가 되어 있었던 살라딘 군에 의하여 철저하게 패배 당한다. 이 충돌로 인하여 예루살렘 왕국 측의 지도층 인사와 템플 기사단의 기사단장이 사로잡혔다. 이들은 이후 몸 값을 지불하고 살라딘 측에서 풀려나지만, 템플 기사단장은 몸 값 지불을 거절하고 다마스쿠스의 감옥에서 죽는 것을 택한다.

1179년의 살라딘의 승리 이후 보두앵 4세와 살라딘의 대결은 잠시 소강상태를 맞는다. 살라딘에게 우선순위는 이미 기세가 한 풀 꺾였다고 판단되는 예루살렘 왕국이 아니라, 아직 자신의 세력권 안에 들어오지 못한 시리아 지역이 먼저였다. 그는 1186년까지 알레포를 장악하고, 모술에 대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시리아 전역에 대한 세력 확대에 성공한다. 그리고 예루살렘 왕국에서는 1185년 보두앵 4세가 지병으로 사망한다.

보두앵 4세가 사망한 이후 예루살렘 왕국의 왕권은 조카인 보두앵 5세에게 넘어가지만, 선천적으로 병약했던 탓이었는지, 약 1년 만에 사망하게 된다. 보두앵 5세 사망 이후, 왕권은 보두앵 4세의 누나이자, 보두앵 5세의 어머니인 시빌라(Sibylla), 그리고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인 기 드 뤼지냥(Guy of Lusignan)에게 이양 된다.

기 드 뤼지냥은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유럽의 지원이 절실했던 예루살렘 왕국의 상황 때문에 보두앵 4세에 의하여 시빌라와 정략 결혼을 하지만, 정작 기의 정치/외교적인 능력은 한심한 수준이었다. 그는 예루살렘 왕국의 왕위를 획득하였지만, 당시 예루살렘 주변에서 이슬람 순례객과 대상(Caravan)을 약탈하고 다니던 르노 드 샤티옹(Raynald of Chatillon)을 방치하였으며, 이는 이제 막 시리아의 세력을 안정화 시킨 살라딘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1187년 3월 13일, 살라딘은 시리아의 십자군 국가들에 대한 성전(Jihad)를 선포한다. 그리고 같은 해 7월 4일 예루살렘 근처 하틴(Hattin)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예루살렘 왕국군을 괴멸시킨다. 약 2만에 달하던 예루살렘 왕국군 군사 중 약 3천여명만 살아서 예루살렘으로 귀환 할 수 있었다. 국왕인 기 드 뤼지냥과 전쟁의 원인이었던 르노 드 샤티옹은 살라딘에게 포로로 붙잡혀 버린다. 포로가 된 기 드 뤼지냥은 살아남아 이후 풀려나지만, 르노 드 샤티옹은 살라딘에 의해 그 자리에서 즉결처형 당한다. 이 전투에서 이벨린의 발리앙(Balian of Ibelin)이 포로가 되는 것을 겨우 면하고 살아남아 예루살렘으로 귀환한다.


큰 지도에서 하틴 전투 / Battle of Hattin 보기

예루살렘 왕국의 주력을 격파한 살라딘은 이제 성지인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었다. 살라딘의 대군을 막아내기 위한 예루살렘 왕국의 지도자는 하틴에서 살아남은 발리앙, 예루살렘의 대주교 헤라클레스, 그리고 남편을 포로로 잡힌 예루살렘의 여왕 시빌라 뿐이었다.

주요 인물들

보두앵 4세(1161 ~ 1185)

예루살렘 왕국의 아모리 1세의 아들. 그의 나이 아홉 살 때 친구들과 놀다 작은 생체기가 났음에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을 본 가정교사가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여 즉시 의사에게 진찰을 한 결과 한센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는다. 당시의 의술로는 한센병은 치료가 불가능했고, 때문에 그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같았다. 성년이 된 이후 병이 진척되어 안면이 망가지자, 그는 은색 가면을 쓰고 정무를 처리했다.

아모리 1세가 사망한 후, 나이가 아직 어린 보두앵 4세를 대신하여 트리폴리의 레몽 3세가 섭정통치를 하였다. 즉위 한 뒤 2년 뒤 성년이 된 보두앵 4세는 레몽 3세로 부터 전권을 다시 돌려 받았다. 어려서 부터 걸린 불치의 병 때문에 병약한 인상을 가졌을 법도 하지만, 그는 살라딘에 대항하여 매우 공세적인 입장을 취한다. 심지어 몽기사르 전투에서는 살라딘의 대군을 괴멸 시키기도 하지만, 전략적인 열세는 결국 뒤집지는 못한다.

자신의 전임들이 그러했듯, 유럽의 제후들과의 혼인 관계를 통하여 예루살렘 왕국의 세력 강화는 꾀하기도 하지만, 누나인 시빌라가 선택한 기 드 뤼지냥은 혼탁한 예루살렘 왕국에 도움이 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때문에 자신의 사후 왕위 계승권에서 시빌라를 제외하고 조카인 보두앵 5세를 후임으로 지목한다.

1185년의 봄, 지병으로 인하여 짧고 화려한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후 왕위는 보두앵 5세에게 이양되지만, 그 역시 2년도 안되어 사망하게 되고, 예루살렘 왕국의 통치권은 여왕인 시빌라와, 공동 통치권자인 기 드 뤼지냥에게 넘어간다.

시빌라(1160 ~ 1190)

보두앵 4세의 누나. 후에 예루살렘의 여왕으로 등극한다. 예루살렘 왕국의 왕족 여성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그녀 역시 정략 결혼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프랑스 루이 7세와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1세의 사촌인 기욤과 결혼을 하지만, 기욤이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하여 젊은 미망인이 된다. 예루살렘 왕국의 왕위 상속권의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데다가, 국왕인 보두앵 4세가 불치병에 걸려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남편 지위를 노리는 귀족들이 많았다고 한다.

1180년 그녀는 기 드 뤼지냥과 결혼을 한다-이 결정은 그녀의 의지도 있었다고도 한다. 보두앵 4세가 기 드 뤼지냥을 섭정으로 앉히지만, 이후 적지않은 실정으로 인하여 섭정의 자리에서 해임함과 동시에 시빌라의 왕위 계승권도 무력화 시켜버린다.

보두앵 4세가 사망하고, 자신의 아들인 보두앵 5세도 얼마 뒤 사망하게 되자, 시빌라가 여왕으로 왕위에 오르게 된다. 이 때, 그녀에 반대하는 귀족들의 불만을 잠재우고자 왕위에 오르기 전에 기 드 뤼지냥이 아닌 다른 남편을 구하겠다고 약속하지만, 왕위에 오르자마자 기를 공동 왕에 추대한다.

살라딘과의 투쟁에서 결국 예루살렘을 빼앗기고, 시빌라는 트리폴리에서 왕권을 계속 유지한다. 이후 제 3차 십자군과 함께 예루살렘 왕국의 세력권을 되찾기 위한 전쟁을 치루던 중 전염병에 걸려 사망한다.

기 드 뤼지냥(1159 또는 1160 ~ 1194)

시빌라의 남편이자, 예루살렘 왕국의 공동 왕.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눈이 부족기 때문에, 예루살렘 왕국을 위기로 몰아넣는데 일조한다. 보두앵 4세에 의하여 잠시나마 섭정이 되었을 때 이슬람 대상(캐러밴: Caravan)을 공격하여 살라딘을 자극하기도 하는 바람에 보두앵 4세가 섭정의 지위를 박탈하기도 했다. 정권을 잡은 이후 하틴 전투 당시에도 전략/전술적인 판단 착오로 인하여 군사들을 사지에 몰아넣은 장본인이기도 하다-이 전투에서 기 본인 마저 살라딘의 포로가 되어 3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게 된다.

예루살렘 함락 이후, 제 3차 십자군이 준동하고, 십자군과 함께 예루살렘 왕국을 수복하기 위한 전쟁을 벌이지만, 시빌라가 전염병으로 사망하게 되자, 왕위 계승권과 관련한 분쟁에 뛰어든다. 하지만, 왕위는 결국 시빌라의 배다른 동생인 이사벨에게 넘어가게 되고, 기는 성전 기사단으로부터 구입한 사이프러스로 향하여 그곳의 영주가 된다. 이후 1194년에 후계 없이 사망하고, 그의 형제인 아모리가 사이프러스의 영주가 된다.

르노 드 샤티옹(1125 ~ 1187)

르노 드 샤티옹이 어디 출신인지는 확실한 기록은 없다고 한다. 제 2차 십자군에 기사로 참가하여, 십자군이 철군 한 이후에도 안티옥에서 일하다가 1153년 안티옥의 콩스탕스와 비밀리에 결혼함으로써 안티옥 공작령을 다스렸다.

안티옥 공작령을 통치하면서부터 악명을 떨치기 시작했으며, 비잔틴 제국 황제와의 약속을 빌미로 당시 비잔틴 제국령이었던 사이프러스를 침공하여 약탈하였다. 하지만 곧 마누엘 1세 콤네누스는 안티옥으로 대군을 진군시켰고, 르노는 맨발로 벌벌 기면서 황제에게 자비를 구했다고 한다.

1160년 이슬람에 대한 약탈 행위를 자행하다 포로로 붙잡히고, 이후 7년 간 알레포에 감금되었다. 이 때에 대한 복수로 그는 살라딘에게 잡힐 때 까지 이슬람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이슬람교도를 무자비하게 다뤘다.

보두앵 4세 치하에서 왕령을 무시하고 살라딘을 자극하는 행동을 한다. 이후 시빌라와 기가 예루살렘 왕국의 통치자가 된 이후에는 더욱 고삐풀린 망아지 마냥 행동을 하며 이슬람 대상과 순례자들을 습격하자, 결국 살라딘이 자신의 손으로 르노 드 샤티옹의 목을 벨 것을 맹세하기에 이르른다. 하틴 전투에서 살라딘에게 사로잡힌 르노 드 샤티옹은 그 자리에서 즉결 처형을 당한다.

이벨린의 발리안(1140 ~ 1193)

이벨린 가문은 다른 십자군 귀족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그리 높지 않은 하급 귀족 출신이었다. 1138년 야파의 백작이 예루살렘 왕국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을 때, 가문이 왕국의 편에 섰고, 이후 반란 진압에 대한 보상으로 1141년 이벨린 성을 하사 받았다. 발리안은 이벨린 가문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뛰어난 전략가이자 웅변가로 고급 아라비아어를 구사할 줄 알았으며, 현지 정세에 밝았다고 전해진다. 몽기사르 전투의 승리도 사실상 그의 전략 하에 이뤄졌다고 한다. 하틴 전투 패배 이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이 살라딘의 군사에 장악 당하자, 살라딘에게 ‘자신의 가족을 예루살렘에서 안전한 곳으로 피난 시키기 위하여’라는 목적으로 안전을 보증하는 통행증을 발급해 달라고 요청하여 살라딘의 승락을 받아내기도 한다-이 때 살라딘이 ‘예루살렘에 단 하루만 체류할 것’을 조건으로 삼았지만, 그는 예루살렘 방어전을 선두에서 지휘하게 된다.

예루살렘 공방전 직후 벌어진 항복 협상에 합의를 하면서 예루살렘 주민들의 석방금을 내기 위하여 자신의 사재를 모두 동원하였고, 이에 감복한 살라딘의 동생이 자진하여 모자란 석방금의 일부를 대납하기도 하였다.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의 영화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의 주인공이기도 한 인물로, ‘반지의 제왕’에서 엘프 ‘레골라스’로 유명한 올랜도 블룸(Orlando Bloom)이 이 인물 역을 맡아 연기하기도 했다.

천상 왕국의 몰락(Fall of A Kingdom of Heaven)

하틴 전투에서 돌아온 발리앙은 살라딘과의 약속을 지키려 하지만, 시빌라와 헤라클레스 주교는 그에게 예루살렘 방어전을 지휘할 것은 종용한다. 결국 떠밀리듯 방어전의 선두에 나선 발리앙이지만, 그가 방어전에서 쓸 수 있는 전투 자원은 한정적이었다. 약 3만에 가까운 살라딘의 군사에 맞서 그는 고작 14명의 기사, 소수의 무장 인원과 궁수들이 있을 뿐이었다. 궁여지책으로 그는 종자, 일반 시민 등 60여명을 기사로 서임한다.

살라딘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직후 살라딘과 발리앙 사이에 협상이 이루어졌지만 곧 결렬되고 공성전이 시작되었다. 공성 병기들이 쉴세 없이 성벽을 공격하고 화살이 하늘을 뒤덮었지만, 전황은 그다지 진전이 없었다. 1187년 9월 29일. 살라딘의 병사가 성벽 아래에 갱도를 파 성벽 일부를 무너트리는 데 성공하지만, 치열한 백병전 끝에 살라딘의 병사들이 진영을 물리게 된다. 이후 살라딘과 발리앙 간의 재협상이 벌어진다.

협상에서 선수를 친 것은 발리앙이었다. 그는 살라딘에게 ‘당신이 결국 예루살렘을 가지게 될 터이지만, 당신이 가질 도시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한다. 기세를 제압한 발리앙은 살라딘의 반응을 살피면서 항복과 관련하여 예루살렘 시민들의 몸 값에 대한 협상을 진행한다.

도시민들의 석방 비용이 결정되고, 이에 대한 지불이 완료되기 까지 약 한달여 정도 걸린것으로 추산 된다. 석방 비용이 모자랐던 관계로 발리앙과 헤라클레스가 사비를 털어 지불하였으며, 살라딘의 동생 역시 이 비용을 지불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살라딘은 노인, 미망인, 고아에 대한 석방 비용을 받지 않기로 결정한다. 거기에 다른 도시로 이주할 비용까지 자신의 사재에서 지급하기도 한다.

예루살렘은 살라딘에 의하여 다시 이슬람 진영으로 수복되었다. 살라딘은 로마 가톨릭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였고, 성묘 교회를 로마 가톨릭에서 관리하도록 하였다. 예루살렘 왕국은 사실상 괴멸상태나 마찬가지였지만, 트리폴리에서 그 명맥을 유지한다.

하틴전투에서의 패배와 예루살렘의 함락 소식이 유럽에 전해지자, 로마 가톨릭 교황은 제 3차 십자군의 결성을 호소한다. 이 호소에 호응하여, 잉글랜드 왕국의 사자심왕 리처드, 프랑스 왕국의 존엄왕 필리프 2세, 신성로마제국의 붉은 수염 프리드리히 1세가 잃어버린 성지를 회복하기 위하여 유럽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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