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 앤 스트레테지 외교 시스템 디자인 기록

아미 앤 스트레테지: 십자군의 시작은 원래 전통적인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여러 장치들을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예전에도 이야기 했다시피 프로젝트는 초기의 아이디어와는 완전히 상반된 형태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진행되어가면서 게임의 성격이 변화됨에 따라서 외교 시스템 또한 ‘역시 있어야겠지?’라면서 자연스럽게 추가 되었다.

다행이도 외교 시스템 디자인은 전투 시스템 디자인처럼 혼란의 도가니가 펼쳐지지는 않았다. 목표는 단순했고,  우수한 사례의 벤치마킹을 수행하였기 때문이었다(라고 믿고싶다). 외교 시스템에 있어서의 디자인 목표는 다음과 같았다.

  • 외교 상에 나타나는 복잡한 의사 결정을 단순화 시킬 것
  • AI 플레이어들의 외교 의사 결정은 사용자가 인지 할 수 있는 ‘납득 가능한’ 이유를 보여 줄 것
  • 사소한 외교 전략적 결정들이 누적되어 서로 다른 결과로 나타날 것

벤치마킹

첫 번째와, 두 번째 디자인 목표를 잡은 이후, 팀은 다양한 전략 게임에서의 외교 시스템 디자인 사례를 참고하였다. 1997년을 회상하는 게이머들이라면 필수라 할 수 있는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 범접할 수 없는 게임 크리에이터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 역사 시뮬레이션의 새로운 발전기를 그리고 있는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의 토탈 워 시리즈, 그리고 전략 ‘시뮬레이션’의 강자 페러독스 인터렉티브의 빅토리아 시리즈가 그것이었다.

삼국지 시리즈의 외교 시스템의 특징은, 국가간 정세를 수치화 정량화하여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외교 기능’으로 동작하는 성격이 강했다. 때문에 단순하고 직관적이긴 했지만, 외교는 단순히 일방으로 흐르기만 할 뿐 시스템으로 순환하는 체계는 아니었다.

그에 비하여 문명 시리즈, 토탈 워 시리즈, 그리고 빅토리아 시리즈 같은 게임들의 외교 시스템은 수치를 이용하여 정량화 시키고 이 수치들을 복잡한 계산을 통해 ‘외교 정세’와 ‘외교 행동’을 만들어내었다. 외교 시스템의 복잡도는 문명 → 토탈 워 → 빅토리아 순으로 높았다. 복잡도가 높을 수록 현실적인(즉, 거의 대부분은 분명 지루해할 만한) 외교 시스템의 제작이 가능했지만, 그만큼 단순하고 직관적인 시스템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가간 관계 정의

아미 앤 스트레테지: 십자군의 외교 시스템은 문명, 토탈 워, 빅토리아 시리즈 같은 정량적이고 상호 작용이 가능한 외교 시스템으로 가닥을 잡았다. 외교 시스템의 기본적인 규칙은 아래와 같다.

  • 양 국가간에는 하나의 ‘관계 점수’를 가진다
  • 이 관계 점수를 기준으로 AI 플레이어는 상대 국가에 대한 외교 행동을 결정한다
  • 관계 점수는 게임 상의 모든 외교 관련 행동들(전쟁, 선물, 교역 등)에 관련한 항목 점수를 합산하여 결정한다
  • 각 행동에 대한 점수는 ‘플래그(Flag)’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며, 일정한 규칙에 따라서 증감한다
외교는 관계점수 값에 의해 움직인다

관계 점수는 양 국가간 하나의 점수만 존재한다. 일부 게임들의 경우에는 ‘나에 대한 너의 점수’와 ‘너에 대한 나의 점수’가 분리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단순화를 목표로 이 부분은 과감하게 배제하였다.

관계 점수는 AI 플레이어들의 행동에 대한 기준이기도 했다. 전쟁 선포에 필요한 관계 점수 한계를 넘었을 경우, AI 플레이어는 지체없이 사용자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관계 점수가 모자르다면 군사 동맹 제의를 거절하기도 한다. AI의 타입을 선정할 때에도 이러한 관계 점수 기준의 폭을 조절함으로써 다양한 형태의 AI 타입을 만들었다. 어떤 AI는 사용자 국가에게 관대한 성향을 보이거나, 혹은 그 반대의 성향을 보일 수도 있다(하지만 결과적으로 AI의 성향은 관계 점수의 폭 보다는 종교 관계에 더 크게 영향을 받았다-이는 전체 시스템 디자인의 밸런스를 종교에 더 많은 영향을 받도록 설계한 탓이 크다).

관계 점수는 게임상의 거의 모든 행동들에 영향을 받았다. 특정 국가와 전쟁을 벌이거나, 동맹을 맺거나, 동맹과 싸우거나, 나의 적과 다른 국가가 싸운다던가 할 때 마다 관계 점수는 계속 요동 친다. 종교적인 이벤트(그러니까 십자군 선포)가 발생 할 경우에 기껏 쌓아놓은 관계 점수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경험도 할 수 있다. 때문에 국가간 관계 점수는 지속적으로 확인과 유지가 필요한 시스템이 되었다.

국제 정세란게 내 맘대로 안되는게 당연

외교 행동

아미 앤 스트레테지에서의 외교 행동은 ‘필요한 것만’, 그리고 ‘단순하게’를 목표로 결정되었다. 때문에 국가간 교역, 동맹, 선물, 조공 요구, 전쟁 선포, 휴전 같은 익숙한 단어들만 남았다.

외교 전략 옵션

외교 시스템이 ‘관계 점수 관리’를 강제하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외교 전략’이라는 항목이 프로토타입 이후 추가 되었다. 사용자는 다른 국가들에 대한 관계 점수 관리를 옵션 설정 값 하나로 결정을 할 수 있다. AI 플레이어 역시 주변 국가들에 대하여 AI 성향에 따라서 관계 점수 관리를 할 수 있다. 이것은 매 턴 마다 관계 점수를 확인하기 위하여 외교 시스템을 확인해야 하는 불편함을 어느 정도 줄여주는 효과가 있었다.

관계 인디케이터(외교 게이지)

처음 외교 시스템을 프로토타이핑 했을 때 문제점은, ‘나와 상대와의 관계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각 국가와의 관계 점수를 디스플레이 해주기는 했지만, 수치로 나열 된 데이터에서 사용자가 원하는 데이터를 찾는건 상당히 어려웠다(이것은 다른 게임들의 외교 시스템에서도 마찬가지 문제였다). 사용자는 어째서 AI가 이 상황에서 전쟁을 걸어오는지, 왜 AI가 나의 제안을 거절하는지 알지 못하였다. 상대의 반응에 대하여 플레이어가 납득할 수 있는 정보가 너무나 부족했다.

관계 인디케이터와 외교 이벤트 연출

이러한 상황은 외교 UI에 관계 인디케이터를 집어넣으면서 해결되었다. 외교 창 상단에 해당 국가와 나와의 관계 점수 위치, 그리고 관계 점수가 어느 위치에 도달해야 상대가 외교 행동에 응할 것인가에 대한 정보를 가감 없이 표기해 버렸다. 이것 때문에 장점과 단점이 생겼는데, 우선 장점은 ‘망할 외교가 정말 쉬워졌다’라는 것이다. 기존의 서구형 게임들의 외교는 상대의 ‘어투’나 ‘반응’에 주의하여 진행을 해야했다. 이 부분이 좀 더 사실적인 ‘외교’의 감각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주효하긴 했지만, 때문에 외교 시스템의 전반적인 난이도를 올리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을 했고, 이는 어느정도 들어맞았다.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외교 시스템이 직관적으로 변한 대신 그 직관 만큼 외교에서 상대 눈치를 보는 것 대신 ‘점수 관리’라는 외교 시스템의 본질적인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다들 이게 무서워서 그렇게 꽁꽁 숨겨둔 것인지도 모른다). 이를 커버하기 위해서 캐릭터들이 설전을 벌이는 형태의 연출을 최종적으로 삽입하였다. 맨 얼굴에 기초 화장을 다시 한 것 처럼.

현재

외교 시스템은 다른 시스템들에 비하여 상당히 초기에 디자인이 완성이 되었고, 그 이후 지속적으로 밸런스 조정만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이다. 외교와 관련한 이벤트 연출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꾸미는 부분에 대한 고민과, 전체적인 외교 정세를 어떻게 사용자에게  쉽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아직 남아있는 상태이다.

다른 게임의 시스템 차용이라는 논란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을 통하여 시스템을 개선하고자 하였다고 자평한다. 대박인걸?! 은 아니더라도 괜찮아 정도의 기분.

아, 그렇게 안일해서야 게임을 인정 받을 수 있겠나? 라는 불안감이 잠깐 엄습한다. 자 이제 글을 이만 줄이고 밸런싱이나 잡으러 가야지. (…)

아미 앤 스트레테지 게임 디자인 연작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