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이 한국 법의 적용을 받을 때

어제(2014. 10. 23.) 국내의 게임판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 스팀 심의 문제는 어떻게 보면 그간 넝마처럼 유지되어 왔던 게임의 사전 심의 제도의 적나라한 문제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 생각한다. 게임 심의 제도는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게임을 차단 / 격리’ 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게임 문화 발전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일 뿐이다.

스팀이 한국 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유권 해석이 내려진 이후 입법부와 행정부가 풀어야 할 문제를 한 번 살펴보자(첨언하자면 ‘한국어 게임만 대상’이라는 유권해석을 지나치게 신뢰하면 곤란하다. 법령 등 관련근거가 전혀 없는 내용인데다, 문화부와 게임위는 관련근거 없는 유권해석으로 이미 아마추어 게임 심의 문제에  ‘심의 필요 없음 → 심의 필요’로 입장을 바꾼 적이 있다).

  1. 국내의 유통사가 정식 라이센스를 가지고 패키지 심의를 받았을 때, 스팀에서 해외 제작사가 직판하는 게임은 ‘병행 수입’에 해당하는가?
  2. ‘병행 수입’이 맞다면 해당 해외 제작사는 국내에서 다시 심의를 받아야 하는가? – 현재 병행 수입 제품은 동일 플랫폼이라도 유통 주체마다 따로 심의를 받아야 한다.
  3. 스팀은 ‘게임물 유통업 등록’을 해야 하는가?
  4. 스팀에 입점하고 있는 전 세계의 게임 개발자들은 ‘게임물 제작업 등록’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미 등록 시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
  5. 국내 유통사가 심의를 받고 스팀 내 병행 수입(..) 업자가 미심의인 경우 스팀 연동으로 플레이 되는 게임은 심의 게임인가 미심의 게임인가?
  6. 사실상 게임 전용 ‘오픈 마켓’인 스팀이 국내 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면 아마존, 이베이, 알리바바 등의 국내 법 적용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7. 아마존 같은 경우 디지털 컨텐츠 다운로드 판매 서비스를 지원하는데 그렇다고 한다면 아마존의 판매자들 역시 게임물 유통업 등록과 게임 심의를 거쳐야 하는가?
  8. 그리고 스팀과 마찬가지로 아마존, 이베이의 개별 판매자들도 각각 게임 심의를 따로 받아야 하는가?
  9. 결국 전 세계의 게임 개발사, 게임 유통사, 인디 게임 개발자 및 게임 관련 종사자 전체를 한국 법의 적용 범위에 넣겠다는 이야기인데 문화부와 게임위는 그럴만한 행정력(예산, 조직, 규정 등)을 갖추고 있는가?

게임 심의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미 수년 전 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입법 및 행정부에 지속적으로 제기 되어 왔다. 문제가 불거질 때 마다 담당 행정부서는 땜빵식 처방을 내놓는데 급급했고 결국 오늘의 스팀 사태에 와서는 터질 것이 다 터졌다는 것이 개인적인 감상이다. 담당 공무원과 기관 담당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게임 심의 제도는 완벽하게 실패했다. 그 근본부터 다시 검토해서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처럼 땜빵할 생각  하면 안된다.

그럼 어떻게 바꿔야 하나?

개인적인 입장에서 게임 심의 제도의 주 목적인 ‘청소년 보호’와 ‘사행성 게임 차단’에 대해서는 그 목적에 대해 공감을 하긴 하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한 ‘이 세상 모든 게임에 대한 사전 심의 제도’는 이미 그 부작용이 크다는 점만 여실히 증명했다. 법을 준수하는 게임 제작사, 인디 게임 개발자와 아마추어 게임 개발자, 게이머들이 게임 심의 제도에 의한 각종 피해를 입는 동안, 사행성 게임 업자들은 법을 무시 한 체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상식적으로 법을 무시 하고자 하는 인간들이 게임 심의 제도에 연연이나 할까?)

효율적인 규제 목적 달성과 규제에 의한 선의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게임 심의 제도는 근본부터 검토되고 재설계 되어야 한다. 개인적인 의견을 몇 가지 정리 해 보자면.

  • 사행성 게임은 사전 심의 같은 전제적인 방식이 아니라 철저한 단속과 처벌로 이루어져야 한다. 현 게임위에 남아있는 심의 관련 기능은 완전히 민간으로 이양(게임 심의에 대한 규정 재개정 권한은 여전히 게임위가 가지고 있음)하고, 게임위는 사행성 게임 단속권에 대한 대대적인 강화가 필요하다.
  • 유해 매체로 부터의 청소년 보호는 사전 심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사회, 게임 산업계, 교육계, 가정의 적절한 교육과 지도로 달성되어야 한다.
  • 게임 심의 제도는 소비자 정보 전달 및 이를 통한 보호 목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민간 주도의 심의 기구는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 전달을 함으로써 소비자가 잘못된 게임(청소년에게 문제가 될 여지가 있는 게임 등)을 소비작 선택 할 가능성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 법 적용 대상의 범위와 한계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현재의 모든 문제는 결국 지나치게 광범위한 법 적용 대상에 있다. 해야만 하는 / 그리고 할 수 있는 부분으로 법 적용 대상을 최대한 줄이고, 스팀 등과 같은 법 적용의 실패 사례가 나올 때 마다 즉시 이를 개선하고 수정해야 한다.
  • 무엇보다 게이머와 게임개발자, 그리고 게임을 즐기는 모두-결국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 끝에 그에 걸맞는 제도가 나와야 한다. ‘귀찮으니 다 막아’ 같은 생각을 21세기도 14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끌고 오면 어쩌자는 건가.

P.S. 블로그에 이렇게 떠든다고 이게 될 일은 아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 규제개혁위원회에 규제 개혁을 요청하자(개인적으로는 이미 민원 등록을 완료 한 상태). 당장 심의 적용 대상의 설정은 게임위나 국회가 아닌 문화부가 그 열쇠를 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