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팀 그린라이트 답사기

파이드 파이퍼스의 첫 작품인 아미 앤 스트레테지: 십자군(이하 AnS)이 스팀 그린라이트에 등록을 한지도 벌써 3주째가 되어가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상용 인디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개발자의 입장에서 스팀이라는 존재가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는 별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물론,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인디 게임 개발자의 염원 중 하나가 ‘내 게임을 스팀에서 판매하기’인 것은 부정 할 수 없을 것이다.

스팀, 그리고 스팀 그린라이트

스팀과 스팀 그린라이트에 대해서 전혀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략한 소개를 한다면, 우선 스팀(Steam)은 하프라이프(Half-Life) 시리즈와 포탈(Portal) 시리즈로 유명한 게임 제작 업체인 밸브(Valve)의 디지털 온라인 게임 유통망 서비스이다. 전세계 약 4천만에 달하는 유저를 보유하고 있는 스팀은 PC/Mac/Linux용 게임들을 디지털 다운로드 방식으로 판매/유통 하고 있으며, 많은 수의 인디 게임들 역시 스팀을 통하여 판매되고 있다.

Greenlight_logos

스팀 그린라이트(Steam Greenlight)는 개발자가 자기 게임을 스팀에 올려 판매하기 위한 일종의 관문(Gateway)이다. 원래 스팀은 전통적인 입점 방식을 운용하여 입점 담당자가 스팀에 입점 시키고자 하는 게임을 직접 접촉하거나, 혹은 입점을 원하는 업체가 담당자에게 접촉하여 게임 검수 및 스팀 연동 작업 등을 거쳐 게임을 스팀에 등록하였다.

이러한 전통적인 등록 방식은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스팀의 이용자 규모가 늘어나면서 게임 유통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나기 시작한데다, 이러한 시장 규모에 힘입어 그간 수익이 미미했던 인디 게임들 역시 스팀에 입점 후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면서 수 많은 게임들이 스팀에 입점하길 원했고, 한정된 자원의 입점 담당자가 그 많은 요청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버린 것.

이에 대한 대안으로 벨브는 스팀 그린라이트 시스템을 도입한다. 그간 입점 담당자가 담당했던 업무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업무인 ‘팔 만한 게임 걸러내기’ 기능을 스팀을 이용하는 이용자들에게 떠넘겨버린 것이다.

기본적으로 스팀에서 게임을 판매하고 싶은 제작사나 개인은 스팀 그린라이트 서비스를 이용하여 자신의 게임을 등록할 수 있다. 이를 통하여 게임을 소개할 수 있는 페이지가 마련되고, 이 페이지에는 스팀 이용자를 대상으로 ‘투표’를 받는 기능이 존재한다. ‘이 게임이 Steam에 출시되면 구매하실 의향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예’를 많이 받아낸 게임이 입점 담당자에 의해 선정되어 Greenlit 상태로 전환되며 이후 스팀 등록을 위한 본격적인 절차를 진행하게 되는 것이다.

어서와, 그린라이트는 처음이지?

스팀 그린라이트에 자신의 게임을 등록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린라이트 접근권’을 구매해야 한다. 미화로 100 달러에 해당하는 이 접근권은 1회만 구매 한 이후 무제한으로 스팀 그린라이트에 게임을 등록 할 수 있게 된다(원래는 등록 비용이 없었지만, 서비스 직후 생겨난 수많은 장난/가짜 프로젝트를 방지하기 위해 접근권 판매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Greenlight Access
어서와~

게임을 등록하고, 관련 정보와 동영상 스크린샷을 저장하고 나면 그린라이트에서 캠페인을 시작 할 수 있다. 게임 페이지를 ‘공개’상태로 전환을 하게 되면 그 직후부터 그린라이트 페이지의 ‘최근 제출물’에 표시되는 자신의 게임을 확인 할 수 있다.

게임을 등록한 등록자, 등록자가 지정한 ‘기여자(아무래도 공동 제작자의 오역인 듯 하다)’들은 자신의 게임에 대한 투표 현황, 게임 페이지 방문자 수 등을 확인 할 수 있다. 크게 총 4개의 데이터를 제공하는데,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 전체 그린라이트 등록 게임 중 상위 100위에 들기 위해 필요한 달성율(%) 현황
  • 최근 7일간의 ‘네’ 투표 비율(내가 등록한 게임과 상위 100위와의 차이를 그래프로 보여준다)
  • 순 방문자 수(Unique Visitors)
  • 현재 즐겨찾기 수

데이터! 데이터를 보자!

사실 스팀에서 기본 제공하는 저 데이터로는 대체 내가 등록한 게임의 캠페인에서 구체적으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추상적인 그래프로 전달해주는 데이터는 집중해서 분석하지 않으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기 십상이다.

일단, AnS를 처음 그린라이트에 공개하고 첫 일주일이 지난 이후의 데이터를 보도록 하자.

2012-12-16
12월 10일 부터 12월 16일 까지 기록

AnS는 첫 일주일 동안 상위 100위에 들기 위한 달성율의 32%를 획득했다. 처음 공개 될 경우, 게임의 이미지가 메인 페이지에 존재하는 ‘그린라이트 이미지 링크’에 자동 삽입이 되고, 그린라이트 메인 페이지에 있는 ‘최근 제출물’에 로테이션으로 출력이 된다. 여기서 유입되는 인원이 거의 대부분이라고 할 정도일 것이다.

Greenlight Main
그린라이트 메인 – 사용자는 ‘내 대기열’과 ‘최근 제출물’만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여기서 쫓겨나면 스팀을 통한 추가 유입은 없는걸로 봐야 한다

여기에 더하여 국내에 ‘스팀 그린라이트 등록’과 관련한 대대적인 캠페인을 수행한 것도 한 몫 했다. 첫 주의 월요일에서 금요일 동안 공식 홈페이지에서의 안내, 트위터, 페이스북을 이용한 캠페인, 텀블벅에서의 투표 독려, (운 좋게 타이밍이 맞았던) 국내 각종 게임 웹진에 기사 및 인터뷰가 나간 덕분에, 많은 분들이 호응해주신 것으로 알고 있다.

This is game
게임 웹진 메인에 걸리는건 쉬운일이 아닙니다

7일간의 ‘네’ 항목 투표는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이는 국내에서의 캠페인 효과 감소에 의한 원인이 하나가 있으며, 특히, 금요일 → 토요일 사이에 ‘그린라이트 메인 페이지’에서 게임이 사라짐과 동시에 투표 항목이 줄어든 것을 확인 할 수 있다(위 이미지에서는 나타나지 않지만, 순방문자 증가율 역시 순식간에 낮아졌다).

첫 일주일간의 순 방문자 수(이 페이지에 중복으로 방문하는 사람들을 제외한 순수 방문객 수)는 12,248명을 달성했다. 참고로 이 수치는 파이드 파이퍼스 공식 홈페이지를 지난 2년간 운영하면서 기록한 전체 순 방문자 수(2012. 12. 28. 현재 10,661명)를 한참 뛰어넘는 수치이다.

버프 종료

시스템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유명하지 못한)게임은 순식간에 바보가 되는것이 스팀 그린라이트 시스템의 단점이라고 해야 할까? 여기 2주차 데이터를 보도록 하자.

2012-12-23
12월 17일 부터 12월 23일까지 기록

달성율은 32%에서 35%로 고작 3% 증가했을 뿐이다. 그래프로 보여지는 투표 수 역시 상위 100위 게임들에 비해 저조한 득표율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린라이트 메인 페이지’에 게임이 걸려있느냐 아니냐에 따른 순 방문자 수 증가율은 더욱 처참하다. 12,248명이 방문했던 첫 주에 비해서 고작 1,950명이 우리 게임 페이지를 방문했을 뿐이다.

목요일과 금요일 위치를 보도록하자. 스팀은 12월 20일(목) 부터 홀리데일 세일 캠페인을 시작하고 있다. AnS를 비롯하여 상위 100위 게임들 역시 득표율이 드라마틱하게 떨어지는 이유는 스팀이 홀리데이 세일을 위하여 스팀 그린라이트 링크를 메인에서 치워버렸기 때문이다.

2012-12-28
12월 22일 부터 12월 28일 까지 기록

여기 3주차(이글을 쓰고 있는 현재까지의 데이터)를 보도록 하자. 달성율은 5일간 1% 증가, 순방문자 수는 427명으로 감소하였다. 득표율 그래프를 보면 별다른 변동 없이 꾸준하게 득표를 하고 있지만, 상위 100위와의 득표율 차는 꽤 크게 나는 편이다(그래프의 단위가 상대적인 것을 감안하자).

이 자료를 볼 때 홀리데이 세일 이후 그린라이트의 전체적인 유입량 자체가 줄었다는 것을 유추 할 수 있다. 사실 웹 서비스 접근성에서 많은 뎁스(Depth)를 가지는 페이지는 사람들이 접근을 극단적으로 꺼리게 된다. 그린라이트에 등록되어 있는 특정 게임의 페이지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스팀 메인 → 커뮤니티 → 그린라이트 메인 → 특정 게임 페이지의 네 단계를 거쳐야 되는데, 이는 사실상 사용자들에게 그린라이트를 이용하지 말라고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만, 이 현상은 스팀의 홀리데이 세일이 종료되면 다시 원래의 상태로 복구 될 것으로 보인다.

Steam Holiday Sale
스팀 세일은 여러분만 피눈물 흘리게 만드는게 아닙니다

게이머의 지갑과 그린라이트의 득표율 모두를 비우는 스팀의 악마같은 세일은 어차피 모든 그린라이트 게임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문제니깐 그렇다 치고, AnS는 어째서 상위 100위 게임들과 현격한 차이가 나 보이는 득표율을 기록하고 있을까? 분석 할 수 있는 데이터가 적기 때문에 확답은 할 수 없지만, 몇 가지를 유추 해 볼 수 있다.

  • 대규모 커뮤니티에 대한 캠페인 부재: AnS는 현재 국내에서의 홍보 활동은 사실상 종료 된 상태이고, 해외에서의 홍보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홍보를 위한 ‘소스’ 확보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현재는 보류 상태에 있다. 일반적으로 상위 100위에 있는 게임들은 그린라이트 등록 이전에 탄탄한 팬 층을 확보하고 있거나, 인디 관련 언론 등에서 많이 소개된 게임들이 대부분이다.
  • 스팀의 ‘대기열 등록 기준': 그린라이트 메인 페이지의 가장 상단에는 ‘내 대기열’ 리스트가 존재한다. 이는 그린라이트 시스템 내에서 자동으로 추천하는 리스트를 표시하게 된다. (경험에 의하면) 그린라이트에서 ‘노른자 위 땅’인 ‘내 대기열’에 표시되는 알고리즘이 따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서 다른 게임들 보다 득표율이 높은 게임, 혹은 많은 득표수를 보이는 게임, ‘즐겨찾기’에 많이 등록 된 게임들이 여기에 먼저 표시 될 가능성이 높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지금 AnS의 그린라이트 캠페인에서 필요한 것은 적극적인 외부 홍보 활동이다, 스팀과 그린라이트 시스템 내에서의 노출은 더 이상 기대 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스팀 외부에서 답을 찾는 것이 맞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게임에 대한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홍보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은 게임 개발 단계를 좀 더 진척시키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아니 그걸 아는 사람이 지금 게임 안 만들고 글을 쓰고 있…

그린라이트의 초반을 경험해 봤을 때,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인디 게임 팀의 첫 작품이 그린라이트 허들을 뛰어넘는 것은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 그린라이트는 절대로 좋은 홍보수단은 아니다. 홍보는 외부에서 적극적으로 해서 그린라이트 안으로 사용자를 끌어와야 한다(물론, 게임이 엄청나게 좋다면 홍보는 알아서 될 것이긴 하다-마인크래프트 같이 말이지).

좋은 게임을 만들어낸다고 하더라도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 게임을 적극적으로 알릴 방법을 강구하지 않으면 그린라이트는 무시무시한 진입장벽으로 다가올 것이다(AnS 역시 현재 이 장벽 앞에 가로막혀 있다).

마, 세상 일, 쉬운게 어디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아직 투표를 안 하신 분들은 아래 위젯을 클릭하셔서 투표 좀 부탁합…(굽신굽신).